콜롬비아·멕시코 등 빼고 최소
환자 관리 안돼 강력범죄 우려
우울증 진료 작년 ‘100만명↑’
병상수는 타국에 비해 ‘과잉’

지난 8월 3일 발생한 ‘분당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이 8월 10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성남수정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지난 8월 3일 발생한 ‘분당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이 8월 10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성남수정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지난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국내 정신과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며 최하위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기승을 부린 ‘묻지 마 범죄’가 대부분 조현병 등 정신병이 원인인 만큼 국내 정신과 의사 수의 부족이 강력범죄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전문가는 정신과 의사 수의 충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 효율적인 환자 관리시스템의 작동이라고 밝혔다.

9일 보건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 강은미 의원(정의당)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인구 1000명당 정신과 의사 수는 2020년 기준 한국이 0.08명으로 29개국 평균 0.18명의 절반 이하였다.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멕시코(0.01명), 콜롬비아(0.02명), 터키(0.06명) 등 3곳으로, 2020년 통계가 없는 7개 국가의 최근 수치 역시 모두 한국보다 높았다. 전국 48개 병원의 올해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정신건강의학과는 모집 정원 97명에 142명이 지원해 1.46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서울연구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건강보험통계’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새 서울 시내 정신건강의학과 병·의원은 232곳(76.8%)이나 증가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정신건강 분야 투자가 부족한 게 정신과 의사 수 부족의 원인으로 보인다.

복지부가 김원이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국립정신병원 5곳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충원율은 41.2%에 그쳤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38.4%, 국립공주병원과 국립부곡병원이 27.2%, 국립춘천병원이 42.8%였다.

정신과 의사가 부족한 것과 달리 정신과 병상 수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과잉에 가까웠다. 수용·입원 위주의 환자 관리·치료 관행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가 강은미 의원에 제출한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019년 인구 1천만명당 정신병상 수는 1.24개로, OECD 회원국 중 일본(2.57개), 벨기에(1.41개), 독일(1.30개) 다음으로 많았다. 회원국 평균인 0.65개의 2배에 가까웠다. 정신과 의사 부족 현상이 심한 상황에서, 대표적인 정신 질환 중 하나인 우울증 환자는 증가 일로를 걷고 있다.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인원은 2018년 75만 2976명, 2019년 79만 9011명, 2020년 83만 2378명, 2021년 91만 5298명 등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작년에는 100만 744명으로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정신질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여러 강력범죄 피의자들의 조현병 병력이 드러난 바 있다. 경기 성남시 서현역 흉기 난동 피의자 최원종(22)은 중학생 때부터 대인기피증이 심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았고, 조현성 성격장애 진단도 받아 2015~2020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대전 고교 교사 피습 사건의 피의자인 20대 남성도 2021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충남 공주의 국립법무병원은 치료감호 처분을 받은 ‘정신질환 범죄자’들을 진료하는 국내 단 한 곳의 병원이다. 법무부의 소속기관인 국립법무병원은 심신장애로 인해 범죄를 저질렀으나 그 심신장애로 인해 그 행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람에게, 형벌 집행과 동시에 심신장애를 치료해 재범을 방지하고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일했던 차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환자는 많은데 의사는 늘 정원 미달이어서, 많은 날은 하루에 170~180명씩 환자를 진료했다”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립법무병원에 수용된 정신질환 범죄자(범법 정신질환자)는 796명(8월 29일 기준)이다. 조현병 환자는 이 중 60%가량인 477명이다. 또 입원자의 36%인 290명이 살인 범행을 저질렀다. 그다음으로 폭력 145명, 성폭력 123명, 방화 43명 순이었다.

과거 선생님이었던 40대 교사를 흉기로 찌른 혐의(살인미수)로 현행범 체포된 20대 남성 A씨가 8월 5일 오후 대전 서구 대전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과거 선생님이었던 40대 교사를 흉기로 찌른 혐의(살인미수)로 현행범 체포된 20대 남성 A씨가 8월 5일 오후 대전 서구 대전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환자 인권 무조건 존중 풍토 바뀌어야”

정신과 의사 수의 부족보단 정신질환 환자들에 대한 관리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게 중요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나왔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도 치료를 받는 사람의 비율이 낮다 보니깐 정신과 의사 수가 OECD에 비해 적긴 하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을 안 했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우울증 환자들이 급증하면서 의사 수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어 “정신과 의사 수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어떤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관리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이 더 큰 문제”라며 “조현병 환자들은 스스로 치료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것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무조건 존중하는 풍토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인권이 과도하게 강조돼 이들의 신상 정보에 대한 노출이나 공유가 잘 안되고 있어 환자들이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체계화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 보니 관리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혜택과 치료를 병행하는 정책 개발도 필요하다”며 “가족들이 돌봐주는 게 제일 효과적인 방법이다. 가족들이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도 병행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