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 경색
북러회담 계기 동북아 요동 속
미중 등 접촉… 尹만 홀로 가치
尹정부 내내 北도발 반복될 듯
남북문제 두고 文‧尹 시각 극명

4일 오후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남북정상선언 16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 박능후 포럼 사의제 상임대표, 정태호 민주연구원 원장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경기도) ⓒ천지일보 2023.10.04.
4일 오후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남북정상선언 16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 박능후 포럼 사의제 상임대표, 정태호 민주연구원 원장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경기도) ⓒ천지일보 2023.10.04.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10.4 남북공동선언이 16주년을 맞았지만 남북 관계는 되려 경색을 넘어 단절됐다. 남북 모두 대화를 위한 어떤 제스처도 없고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보이질 않는다.

남북이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날을 세우고 있고 특히 북한은 남한을 이전과는 달리 ‘대한민국’ ‘괴뢰’라는 표현으로 지칭하면서 더 이상 한민족이 아닌 별개의 국가로 치부하는 모양새다.

갈수록 남북 간 군사적 긴장도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 ‘핵’ ‘핵’만을 외쳐대고 있고, 윤석열 정권은 힘에 의한 평화라는 강대강 기조 속 한발도 물러서질 않을 태세라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尹정부 들어 남북관계 멈춰

10.4 남북공동선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10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정상회담을 가진 뒤 채택한 것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경제협력과 사회문화 교류협력을 강화하자는 게 핵심이다.

앞서 2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채택한 6.15 공동선언을 적극 구현하는 등 한 단계 더 진전시킨 것이다. 당시 남북 관계 개선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10.4 공동선언은 남북 교류협력 분야에서 구체적 성과를 기대했지만 노 정부 임기말에 추진하면서 촉박한 시간으로 구체화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이후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추진 동력을 잃었다.

하지만 10.4 공동선언의 정신은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채택한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그대로 이어지며 구체적인 결실을 맺었다. 무엇보다 평양선언에서 마련한 군사 분야 이행 합의서(남북 군사합의서)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의 실질적 기준선이 됐다.

10.4 공동선언이 총론이라면 평양선언은 구체화된 각론이라고 부를 만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9년 하노이 노딜(실패로 끝난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관계가 끊기면서 남북 관계도 경색 국면으로 돌아섰다.

그러다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섰고 이후 남북 관계는 완전히 멈춰 섰다. 지난해에는 북한이 역대 가장 많은 도발을 감행하는 등 남북 간 긴장은 최고조로 치솟았고 이런 연유로 올해는 ‘최후의 안전핀’으로 작동했던 9.19 군사합의에 대한 폐기 논란까지 남측 국방부 장관 후보자와 함께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남북 ‘으르렁’… 향후 전망은

지난달 북러 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주변 정세가 요동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미국과 중국은 갈등 속에서도 협력을 타진하고 있고 일본도 북한과의 북일 정상회담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오직 한미일이라는 가치 연대를 앞세운 윤 정부의 행보와는 정반대다. 남북만 평화협정은 커녕 서로 완전히 갈라져 재래식 무기뿐 아니라 핵무기로 상대를 타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이를 위한 실제화의 형식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형국이다.

남측은 미 전략자산이 동원된 하반기 한미 연합연습을 시행했고 윤 대통령은 3국 협력만이 정답이라는 듯 나홀로 가치를 외치는 등 해외 순방 등 계기가 될 때마다 북한을 포함한 중러를 자극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최근까지 여러 차례 군수공장 등을 시찰하며 ‘전쟁 준비 작업’ 등을 언급하며 위협했고, 지난달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에서는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한다는 문구를 헌법에 명문화하며 핵무력 고도화 의지를 한층 노골화했다.

남북이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으르렁 거리고 있기 때문에 윤 정권 내내 도발과 대북 억지책이 계속 되풀이될 것이라는 견해에 힘이 실린다. 더욱이 이달로 예고한 3차 발사까지 실패할 경우 김정은 정권으로서도 부담이 너무 커 그때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7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정상 각도 발사, 국지성 도발 등 고강도 도발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남북이 당분간은 팃포탯(tit for tat·맞받아치기)식 대응을 반복할 것이라는 설명인데, 내년 미국 대선이 분수령이 되지 않겠느냐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이 핵무력 고도화를 헌법에 못박은 것도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지만, 전문가 일각에서 내놓는 내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가능성을 대비한 몸값 올리기라는 관측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전의 북미 수교와 체제 안전보장을 넘어서 절실한 경제 분야까지 협상 카드로 제시하지 않겠느냐는 진단이다.

정찰위성 발사 등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두고도 한미 당국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북러 군사협력이 기술이전 등을 통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만큼 윤 정부도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내고 있는데, 러시아 외무 차관이 설명하러 오겠다는데도 불발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일각에선 어차피 와봐야 거짓말할 것이라며 대통령실이 마다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북러 군사협력은 우크라이나 전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미국 등 서방에도 매우 민감한 문제다.

◆◆文 “평화로 힘 모아야” vs 尹 “가짜평화론 활개”

10.4 공동선언에 대한 전‧현직 대통령의 시각 역시 극명하게 갈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립이 격화하는 국제 질서 속에 한반도의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고 대화의 노력조차 없어 걱정이 크다”면서 “다시 평화로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또 “10.4 선언의 담대한 구상은 우리 겨레의 소망을 담은 원대한 포부이자 남과 북이 실천 의지를 가진다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라면서 “그 역사적 선언 이후 11년(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긴 공백과 퇴행이 있었지만, 평화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으로 되살아나 우리가 바라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민이 함께 절실하게 평화를 바라고 힘을 모으면 보다 일찍 어둠의 시간을 끝내고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며 “그래야 다시 대화의 문이 열리고, 10.4 선언이 구상했던 평화 번영의 한반도 시대가 가까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에서도 현 정부의 안보 정책을 비판한 뒤 “섬세한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반면 같은날 윤 대통령은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재향군인회 창설 제71주년 기념식 및 전국 읍·면·동회장 총력안보 결의대회’ 현장 축사에서 “안보리 대북 제재를 선제적으로 풀어야 한다, 종전 선언을 해야 한다, 대북 정찰 자산을 축소 운영하고 한미연합 방위 훈련을 하지 않아야 평화가 보장된다는 ‘가짜평화론’이 지금 활개치고 있다”면서 “우리 안보가 안팎으로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극보수 성향이 강한 재향군인회 창설 70주년 행사에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20년 만에 지난해 처음으로 참석하더니 이번에 또 자리한 것인데, 내년 총선용 안보장사라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철 지난 이념 공세는 물론이거니와 문 정부를 비롯한 진보 정부 흠집내기 일환인 데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등의 행태가 보수 세력 결집에 유용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한마디로 잘 먹힌다는 것이다.

남북 관계가 이전의 화해‧협력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노무현재단이 연 토론회에서 “윤 정부 이후 남북 관계가 험악해졌지만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그간 회담에서 합의했던 것들이 토대가 돼서 그 위에다 벽돌을 쌓아갈 수 있다”고 말했고, 문정인 전 청와대 특보는 “일시적 좌절일 뿐이지 각종 회담과 문건을 통해 진보해왔다”면서 “이는 축적적이고 진보 진화적이다. 역사의 흐름을 바꿀수 없다”고 밝혔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 노무현시민센터에서 ‘10.4 남북정상선언’ 16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위기의 한반도, 10.4에서 길을 찾다’를 주제로 열리는 10.4 선언 16주년 기념행사는 노무현재단, 한반도평화포럼, 민주연구원이 공동주최하고 노무현재단과 포럼 사의재가 주관했다. 오후 2시 기념식을 시작으로 1~2세션 토론회, 3세션 토크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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