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이구, 국방 협력 심화 의지”

북러 밀착… 한미일에 반발 관측도

핵‧미사일 기술 지원 쉽지 않을 듯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2023.9.17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2023.9.17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약 4년 만에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막바지 순방 일정까지 군사 시설에 집중돼 주목된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르므주에서 우주발사체 발사 단지를 둘러보더니 15일에는 러시아 하바롭스크주로 이동해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을 찾았고, 16일에는 연해주 소도시 아르툠 인근에서 공군기지와 해군시설을 들여다봤다.

북러 간 군사적 협력 가능성을 대놓고 시사한 셈이라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어느 정도로 군사협력이 이뤄질지도 관심사다. 미국 등 서방도 김 위원장의 러시아 지역 순방 행보가 군사 시설에 집중된 것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김정은, 러 방문… 북러관계 새로운 전기”

17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아르툠-1역 인근에 있는 크네비치 군 비행장으로 이동해 각종 전략폭격기와 다목적 전투기를 비롯해 러시아 공군의 현대적인 군용 비행기를 시찰했다.

그는 크네비치 군 비행장에서 군용 항공기의 전술적, 기술적 제원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항공 무장장비를 살펴봤다. 특히 미그(Mig)-31 전투기에 장착된 극초음속 미사일인 Kh-47 킨잘 미사일 시스템을 직접 만져보며 관찰했다.

러시아어로 ‘단검’을 의미하는 킨잘은 러시아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최첨단 무기다. 전투기에 실려 발사된 뒤 자체 추진체로 가속해 사거리 2000㎞ 내에서 음속의 10배 이상인 최고 시속 1만 2350㎞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속 5배 이상 속도를 뜻하는 극초음속 미사일로 분류된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장거리 전략 폭격기 3대도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를 받았다. 이들 폭격기는 러시아 핵전력의 공중 요소를 구성하는 투폴레프(Tu)-160(나토명 블랙잭), Tu-95MS(나토명 베어), Tu-22M3(나토명 백파이어)다. 킨잘 미사일과 같이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에 투입돼 실제 사용되고 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전략핵잠수함과 수상함, 항공대 등 최신 장비를 갖춘 러시아 태평양함대 기지도 방문했다. 그는 태평양함대에서 마셜 샤포시니코프 대잠호위함에 탑승해 이 함정의 해상작전능력과 주요 무장장비, 전투 성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종합지휘실과 조타실 등을 시찰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김 위원장의 태평양함대 방문을 환영하는 오찬 자리에서 두 나라 국방 당국의 친선과 협조를 더욱 심화시켜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통신은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조러(북러) 두 나라 관계 발전의 역사에 친선 단결과 협조의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고 있다”고 자평했다.

◆북러 군사협력 가능성 대놓고 시사한 듯

김 위원장의 러시아 순방 일정이 군사 시설에 집중된 건 자국 내 군사력 강화 차원으로 그의 관심이 반영된 것인 만큼 북러 간 군사 분야 협력 가능성을 대외에 드러내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북한은 최근 두 차례 군사 정찰위성 발사가 실패한 뒤 다음달에 3차 시도에 나서겠다고 대내외에 공언한 터라 우주기술 확보가 꼭 필요한 것은 물론, 육해공 전력 가운데 가장 뒤떨어진 비대칭 전력인 공군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고 전략 무기‧자산에 대한 관심도 지대해 이 같은 해석에 힘이 실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의 잇단 군사 관련 시설 방문을 두고 서방에 골칫거리인 독재국가와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위협을 증폭시키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가 북한에 밀착하는 행보는 우크라이나전에 필요한 탄약 등 무기를 확보하려는 것뿐 아니라 미국에 위협적인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강화하려는 노림수라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어떤 합의도 위반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의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거나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기간 군사 관련을 포함한 어떤 협의에도 서명하지 않았고 그럴 계획도 없다”고 부인했을 때 겉으로일 뿐이라고 NTY가 일축한 이유다.

북러의 이런 군사적 밀착 행보는 최근 한미일의 군사협력 움직임에 대한 반발 차원으로도 읽힌다. 외교가 안팎에선 벌써부터 북러 정상회담에 이어 오는 10월 푸틴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인 중국 베이징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상 포럼에 김 위원장이 전격 참석해 사상 처음으로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에 맞선 ‘북중러판 캠프 데이비드’가 열릴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미국 견제라는 전략적 일치를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북러 협력 수위가 여러 방면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만만치 않은 건 이 때문인데, 다만 러시아가 그간 대량살상무기(WMD) 비확산 문제 등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어겨가며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기술적 지원만은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미 양국은 북러 정상회담 직후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에 대해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