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밑 지하공간에 시민 ‘호기심’
지하철 2호선 시청역-을지로입구역 사이
3182㎡ 달하는 어두컴컴한 무주 공간
시민 의견 받아 도심 속 명소로 재탄생
공군 방공호도 청소년 문화공간 ‘탈바꿈’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서울시청 관계자들이 5일 서울시청에서 ‘시청역 지하철 역사 시민 탐험대 및 상상 공모전 프레스 투어’를 열고 서울광장 13m 아래 숨겨져 있던 1000여평의 지하공간을 40년 만에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05.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서울시청 관계자들이 5일 서울시청에서 ‘시청역 지하철 역사 시민 탐험대 및 상상 공모전 프레스 투어’를 열고 서울광장 13m 아래 숨겨져 있던 1000여평의 지하공간을 40년 만에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05.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 학교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는 승강장이 숨겨진 도심 속 기차역. 영화 기생충의 흐름을 반전시킨 비밀이 숨겨진 지하실. 앨리스가 이상한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지하공간.

영화와 소설에서 ‘공간’은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매개체 혹은 비밀을 숨겨두는 장치로 애용된다. 최근 서울시가 공개한 도심 속 ‘비밀공간’은 시민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시는 서울광장 13m 밑 지하공간을 40년 만에 언론과 시민에게 공개했다. 이 공간은 지하철 2호선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 사이 지하 2층에 있다. 폭 9.5m, 높이 4.5m, 총길이 335m로 3182㎡(약 1000평)에 달한다. 공간 위에는 지하상가가, 아래에는 지하철 2호선 선로가 있다.

서울시는 ‘시민 탐험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오는 23일까지 시민들에게 지하공간을 개방한다. 천지일보는 지난 8일 오후 시민 약 15명과 방진 마스크에 안전모를 쓰고 지하공간으로 ‘탐험’을 떠났다.

지하공간은 입구부터 신비로운 느낌을 풍겼다. 을지로입구역 서울 장난감 도서관 안쪽 공간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40년간 잠들었던 지하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환풍 시설이 없어 매캐하고 후텁지근한 공기가 캄캄한 무주 공간을 메웠다. 석회 동굴에서 볼법한 종유석과 석순은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래로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지난 8일 서울광장 아래 지하공간을 탐험하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이 지하공간에 형성된 시멘트 종유석과 석순을 관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08.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지난 8일 서울광장 아래 지하공간을 탐험하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이 지하공간에 형성된 시멘트 종유석과 석순을 관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08.

이 공간을 놓고 과거 방공호였다는 설부터 반도호텔(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롯데호텔의 전신)에 주둔한 미군이 사용했던 공간이라는 등 여러 추측이 나왔다. 이날 시민 탐험대에 참여한 70대 남성도 “전쟁이 일어나면 높은 사람들이 대피하는 공간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서울시는 이러한 예상과 달리 “높이가 다른 두 지하철역을 연결하는 공사 과정에서 생겨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시는 시민의 의견을 받아 지하공간을 도심 속 명소로 재탄생시킬 계획이다.

지하공간은 과거에 어떠한 용도로 활용됐고, 앞으로는 어떻게 활용될까. 서울광장 아래 지하공간은 어떤 공간으로 탈바꿈할까.

◆지하공간, 어떻게 활용됐나

한국터널지하공간학회에 따르면 지하공간의 기원은 원시인류 시대 자연 동굴로 볼 수 있다. 문명과 건축 기술의 발전으로 지하에 지배자들의 무덤, 전투 터널, 배수로 터널 등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지하공간은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주로 교통이나 수로 건설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다가 현대에는 안정감을 주는 생활공간으로 변화했다. 또 소음이 큰 발전소나 기계시설이 들어서는 장소부터 공연장, 경기장, 도서관, 연구소, 실험실 등 다양한 문화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각종 자연재해, 폐기물 처리 문제 등을 해결하는 대안으로도 제시되고 있다.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지난 8일 서울광장 아래 지하공간을 탐험하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이 지하공간을 둘러본 뒤 계단을 오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08.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지난 8일 서울광장 아래 지하공간을 탐험하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이 지하공간을 둘러본 뒤 계단을 오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08.

◆안전한 보관 장소 ‘지하 벙커’

지하공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지하 벙커’다. 지하 벙커는 군사 목적 외에 저장, 보관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 스피츠베르겐섬에는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가 있다. 핵전쟁, 소행성 충돌, 기상 이변 등 지구에 대재앙이 닥쳤을 때 주요 식물의 멸종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명 ‘최후의 날 저장고’라고 불린다. 해발 130m 바위산에 갱도 길이 120m, 깊이 50m 동굴로 지어졌다.

저장고에는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약 98만종의 종자가 저장돼 있다. 우리나라는 경상북도 봉화군에 시드 볼트(Seed Vault, 종자 저장고)가 있다. 외부 기후와 온도에 영향받지 않도록 지하 46m에 터널형으로 건설됐다. 주로 작물 종자를 저장하는 스발바르 저장고와 달리 봉화 시드 볼트는 야생식물 종자를 저장하고 있다. 봉화 시드 볼트에는 9만 5000여점의 야생식물 씨앗이 보관돼 있다.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 스피츠베르겐섬에 있는 국제 종자 저장고 (출처: 뉴시스)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 스피츠베르겐섬에 있는 국제 종자 저장고 (출처: 뉴시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는 기록물과 데이터를 관리하는 기업 ‘아이언 마운틴(Iron Mountain)’의 지하 창고가 있다. 지하 60m에 있는 석회 동굴을 개조해 벙커로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안을 자랑하는 이 창고에는 세계 기업의 중요 자료가 보관돼 있다. 미국 911테러 당시 비행기 플라이트93의 잔해, 아인슈타인 원본 사진 등이 보관돼 있다고 알려졌다.

미국 켄터키주에는 미 육군 기지이자 금괴 보관소인 ‘포트 녹스(Fort Knox)’가 있다. 미국 정부의 금 보유량은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의 양의 1/3을 차지한다. 미 재무부가 보유한 금괴 약 7400톤 중 61%에 해당하는 4580톤이 포트 녹스에 보관돼 있다.

지하 600m에 만들어진 건물도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 샤이엔산에 있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다. NORAD는 북아메리카대륙 상공을 지나는 항공기, 미사일, 인공위성 등 모든 비행물체를 24시간 365일 추적한다. 입구에는 핵미사일 공격도 견딜 수 있는 25톤짜리 문이 설치돼 있다. 육군, 해군, 해병대, 공군, 해안경비대, 캐나다 군대 출신 200여명으로 구성된 합동군사조직이 NORAD 지하 시설에 상주하고 있다.

◆문화공간으로 바뀌는 지하공간

최근 지하공간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근린공원 내 대방청소년문화의집이 대표적이다. 1956년 준공돼 약 33년간 공군의 방공호로 쓰이던 지하 벙커가 지난해 12월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대방청소년문화의집은 가로 45m, 세로 12m, 높이 10m로 1491.5㎡(451평) 규모다. 지하 벙커의 원형을 살리면서 2, 3층을 다락 형태로 올렸다. 벽에 가상화면을 입혀 클라이밍을 게임처럼 즐기는 ‘스마트 클라이밍’과 도로와 풍경 화면을 보면서 자전거를 타는 ‘바이크 레이싱’ 등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스포츠와 놀이시설이 들어섰다.

(서울=연합뉴스) 여의도 지하 비밀 벙커가 전시문화공간 'Sema 벙커'로 새로 단장해 시민에게 공개된 19일 오전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고 있다. 2017.10.19.
(서울=연합뉴스) 여의도 지하 비밀 벙커가 전시문화공간 'Sema 벙커'로 새로 단장해 시민에게 공개된 19일 오전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고 있다. 2017.10.19.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버스환승센터 밑에 숨겨졌던 지하 벙커는 전시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별관 ‘Sema 벙커’다. 서울시는 지난 2005년 버스환승센터 건립공사를 하던 중 연면적 871㎡의 지하 벙커를 발견했다. 시는 2015년 10월부터 한 달간 시민에게 벙커를 임시 개방했다. 당시 시민 63%는 벙커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을 냈다.

이 벙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위한 대피 공간으로 추정된다. 벙커 내 소파, 화장실, 샤워장 등이 있는 귀빈실을 복원해 시민이 앉아서 관람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한구석에는 ‘경희궁 방공호’가 있다. 길이 100m, 폭 7m, 높이 5m 규모의 2층짜리 터널식 건물이다. 건물 내부에는 10여개의 작은 방이 있다. 폭격에 견딜 수 있도록 약 3m 두께의 외벽이 세워졌다.

경희궁 방공호는 일제강점기 말인 1944년 비행기 공습에 대비해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는 지난 2017년 방공호의 본래 느낌을 살려 조명과 음향 장치를 설치한 뒤 일제강점기 사진 2만여장을 전시해 시민에게 개방했다. 시는 방공호를 서울지역 근현대 유물 수장고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서울시청 관계자들이 5일 서울시청에서 ‘시청역 지하철 역사 시민 탐험대 및 상상 공모전 프레스 투어’를 열고 서울광장 13m 아래 숨겨져 있던 1000여평의 지하공간을 40년 만에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05.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서울시청 관계자들이 5일 서울시청에서 ‘시청역 지하철 역사 시민 탐험대 및 상상 공모전 프레스 투어’를 열고 서울광장 13m 아래 숨겨져 있던 1000여평의 지하공간을 40년 만에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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