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 조작사진 단독 공개
웅장한 5칸의 국보급 건축물, 3칸 사원으로 둔갑시켜
임금만이 출입하던 경복궁 근정전 정문에 일장기 달아
조선박람회를 개최한 일제의 간교한 계략 엿볼 수 있어

1929년 9월 열린 조선박람회 개막일에 조선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부인과 함께 의전을 받으며 근정전에 오르기 전 모습이다. 조선왕실의 위엄을 상징하는 웅장한 근정전의 정문에는 문이 열린 채 일장기가 걸려 있다. 근정전 단상에는 많은 일제 주요 관계자들이 총독을 맞이하려 대기 중이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3.08.31.
1929년 9월 열린 조선박람회 개막일에 조선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부인과 함께 의전을 받으며 근정전에 오르기 전 모습이다. 조선왕실의 위엄을 상징하는 웅장한 근정전의 정문에는 문이 열린 채 일장기가 걸려 있다. 근정전 단상에는 많은 일제 주요 관계자들이 총독을 맞이하려 대기 중이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3.08.31.
사이토 총독이 계단에서 부인과 함께 내려오고 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오른쪽 일장기 상단이 지워졌고 근정전의 오른쪽 팔각지붕 위 아래가 우측으로 꺾여 마치 처마가 있는 것처럼 처리됐다. 일제가 정문 5칸의 웅장한 근정전을 3칸의 일반 정자나 불교 사원처럼 깎아내리려고 조작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일제가 근정전을 왜곡해 대내외 홍보용으로 사용하려고 촬영편집한 것으로 해석된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3.08.31.
사이토 총독이 계단에서 부인과 함께 내려오고 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오른쪽 일장기 상단이 지워졌고 근정전의 오른쪽 팔각지붕 위 아래가 우측으로 꺾여 마치 처마가 있는 것처럼 처리됐다. 일제가 정문 5칸의 웅장한 근정전을 3칸의 일반 정자나 불교 사원처럼 깎아내리려고 조작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일제가 근정전을 왜곡해 대내외 홍보용으로 사용하려고 촬영편집한 것으로 해석된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3.08.31.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일제가 약 100년 전 개최한 조선박람회(朝鮮博覽會)에서 경복궁의 중심이자 조선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근정전(勤政殿)을 더욱 깎아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편집 조작한 사진을 단독 공개한다. 이 기록사진들은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가 소장한 원본사진으로, 정 연구가는 자신의 사재를 모두 팔아 40여년간 전 세계를 돌며 외국인 선교사나 외국인이 찍은 약 7만장의 근현대사 기록사진을 모았다.

조선박람회는 1929년 9월 12일부터 10월 31일까지 열린 박람회 행사로, 조선총독부의 시정(市政) 곧 조선의 식민지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그 장소도 계략적으로 조선왕실의 근간이자 상징인 경복궁을 훼손하고 우리 민족의 정신을 짓밟기기 위해 이곳에서 개최했다.

본지가 단독 공개하는 사진은 조선박람회 개막일에 제3대와 5대 조선총독을 지냈던 사이토 마코토(1858~1936년) 총독이 부인과 함께 입장할 때와 퇴장하는 순간이 담긴 두 장의 사진이다. 우선 사이토 총독이 군악대의 연주와 의전을 받으며 입장하는 사진을 보면 근정전 전경이 보인다. 근정전은 국보 제223호로 지정된 현존 국내 최대 목조 건축물로 경복궁의 정전이다. 이곳은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었으며, 또 정사를 논하는 곳이었다. 중앙에 있는 문은 오직 임금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면서 평소에는 굳게 닫힌 문인데, 일제는 이 문을 활짝 열어둔 것은 물론 바로 그 위에 일장기 2개를 걸어놨다. 이는 일제가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면서 우리에게는 굴욕적인 장면인 셈이다.

근데 일제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진까지 조작한 흔적을 발견하게 됐다. 사이토 총독이 양산을 쓴 부인과 함께 내려오는 사진을 자세히 보면 조작된 흔적이 보인다. 우선 오른쪽 일장기의 모양이 이상하다. 전경 사진과 비교해보면 상단 일부가 지워졌다. 근정전의 오른쪽을 보면 팔각 지붕 위 아래가 절대 처마가 나올 길이가 아닌데 오른쪽으로 꺾으면서 바로 처마가 있는 것처럼 편집 처리했다.

전경 사진을 보면 확연히 다른 게 뚜렷하다. 오른쪽 팔각지붕은 위 아래 모두 상당한 길이를 자랑하는데, 편집된 사진은 교묘하게 지붕아래를 대각선 방향으로 지워버려 마치 웅장한 모습의 근정전을 일반 정자나 불교 사원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정면 5칸에 측면 5칸인 다포계 팔각 지붕의 중층 건물의 국보급 근정전이 정면 3칸의 작은 건물로 축소됐다. 조선왕실의 위엄을 상징하는 웅장한 모습의 근정전을 만천하에 초라하게 보이려 한 의도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일제의 만행에 새삼 입이 딱 벌어진다. 사진이 찍힌 각도만 보면 애초부터 찍을 때 이를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촬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근정전 전경이 나온 사진을 보면 근정전 현판이 글자 윤곽은 드러나 있지만 현판 자체는 빠져 있다. 일제가 일장기를 걸고 현판까지 빼내면서 조선왕실의 위엄을 이미 짓밟은 것인데, 이것도 모자라 사진까지 조작하며 대내외적으로 조선왕실의 위엄을 더욱 깎아내린 셈이다.

이에 앞서 일제는 1915년에 강제병합 5주년을 맞아 기념 축하사업으로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약 두 달간 ‘조선물산공진회’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많은 경복궁을 훼손했다. 이 시기 즈음에 조선총독부 청사도 경복궁 근정전 앞 건물들을 헐고 짓기 시작했으며 박람회 때에 경복궁 내 전각과 궁궐 등을 헐고 많은 부스를 지었다. 14년이 지난 1929년에 개최한 조선박람회 때는 경복궁 훼손이 더 컸다. 이 두 번의 행사로 인해 경복궁 내 전각과 궁궐 등 약 4000개의 건물이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는 1913년부터 자신들의 무단통치를 다른 나라에 합리적인 수단인 것처럼 홍보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는데, 그중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가 조선물산공진회였다. 그리고 택한 장소가 조선왕실의 상징인 경복궁이었다. 일제는 경복궁을 행사 장소로 잡고, 1913년 9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2년간의 공사를 걸치면서 각종 부스 개념의 시설물을 지었다.

식민지 통치 20주년을 앞두고 1929년 개최한 조선박람회는 일제가 산업화로 발전을 이룬 자신들의 위상을 보여주려고 다양한 근대 문물들을 전시했다. 당시 우리 조선인들에게는 대부분이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라 일제에 의해 조선왕실의 위엄이 무너진 것은 인지하지 못한 채 이런 신기한 문물들에 시선이 쏠렸던 것으로 봐진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일본의 이 같은 간교한 계략을 깨달아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차원에서 사진을 공개하게 됐다.

1929년 9월 경복궁 주변 산업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전경 모습. 많은 부스들이 들어서면서 경복궁 내 많은 궁궐과 전각들이 훼손되거나 부서졌다. 오른쪽이 근정전이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3.08.31.
1929년 9월 경복궁 주변 산업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전경 모습. 많은 부스들이 들어서면서 경복궁 내 많은 궁궐과 전각들이 훼손되거나 부서졌다. 오른쪽이 근정전이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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