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탑승 10여명 전원 숨져
푸틴 최측근서 반란자로 전락
신변 위협 우려 결국 ‘현실화’
의문 죽음 속 각종 의혹 난무

러시아에서 무장반란을 시도했던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인근 트베리 지역에서 전용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수사관들이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당국은 이번 사고로 프리고진을 비롯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신화/연합뉴스) 2023.08.24.
러시아에서 무장반란을 시도했던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인근 트베리 지역에서 전용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수사관들이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당국은 이번 사고로 프리고진을 비롯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신화/연합뉴스) 2023.08.24.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러시아 민간군사회사(PMC)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Yevgeny Prigozhin, 61) 바그너 그룹 대표가 러시아 서부 트베리 지역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러시아 군 수뇌부에 무장반란을 일으킨 지 두달 만이다.

러시아 연방 항공운송국 로사비아차(Rosaviatsia)는 프리고진 대표가 23일(현지시간) 동료들과 함께 바그너그룹의 자산인 전용기를 타고 가다가 모스크바 북서부 트베리 지역에서 추락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날 오전 러시아 비상상황부는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던 엠브라에르 레거시(Embraer Legacy) 전용기(비행편명 EBM-135BJ)가 트베리 지역에 추락해 탑승자 10명이 모두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로사비아차는 “프리고진이 추락한 비행기의 승객 중 하나로 등재돼 있다”고 했다.

로사비아차에 따르면 추락한 비행기 조종사는 레브신 알렉세이, 부조종사는 카리모프 루스탐, 승무원은 라스포포바 크리스티나다. 로사비아차는 “이 사고로 프리고진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탑승객 명단에는 프로푸스틴 세르게이와 마카랸 예브게니, 토트민 알렉산더, 체칼로프 발레리, 우트킨 드미트리, 마투세에브 니콜라이와 함께 프리고진 예브게니 대표의 이름이 포함돼 있다. 비행 허가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발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고진 대표가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했고 탑승객 전원이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러시아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각종 분석과 추측, 소문도 뒤따르고 있다.

◆“푸틴·쇼이구의 복수” “다른 꿍꿍이”

현재 “푸틴 대통령과 쇼이구 장관의 복수”라는 쪽과 “뭔가 다른 꿍꿍이”라는 쪽이 각자의 근거를 끊임없이 제시하며 맞서고 있다. 러시아 RT와 스푸트니크 공동편집장인 마르가리타 시모니얀 기자는 “아마도 전자 쪽이 맞을 것”이라고 자신의 텔레그램에서 논평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민간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추방하면서 반란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일부 러시아 고위급 장성들의 운명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지난달 29일(현지시간) AP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왼쪽)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 총참모장의 모습. (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민간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추방하면서 반란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일부 러시아 고위급 장성들의 운명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지난달 29일(현지시간) AP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왼쪽)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 총참모장의 모습. (AP/뉴시스)

서방 언론을 중심으로는 “러시아 방공시스템에서 미사일이 발사돼 비행기를 격추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러시아 군사전문가들은 “비행기가 추락하는 과정에서 화염 등이 전혀 관측되지 않았고, 추락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비행궤적을 보였다”면서 비행기 내부 폭발이나 심각한 고장 등을 추락 이유로 진단했다.

군사전문가 골리야노프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용기에 미사일이 발사됐다는 점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바그너그룹 자산인 전용기가 한 대 더 있었고, 그 비행기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말하자면 프리고진 대표가 두번째 비행기에 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일종의 ‘음모론’이다.

프리고진 대표가 죽은 것으로 알려져야 할 이유가 있다는 ‘음모론’도 나온다. 한 러시아 블로거는 “프리고진 대표는 아프리카에 있고, 비행기 탑승 명단 이외에 그가 탑승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쿠데타 와중인 니제르에 투입됐다는 설이 나오는 가운데 영화 같은 장면이 연출되리라는 추측을 전제로 한 ‘음모론’이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영화 ‘대부’를 연상케 하는 ‘음모론’도 있다. 한 군사 블로거는 “원래 마피아는 죽이기 전에 극적으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연출한다”고 말했다.

쇼이구 국방장관과 불화설이 돌던 와중에 군사적 반란을 일으킨 바 있는 프리고진 대표가 사태 수습 뒤 푸틴 블라디미르 대통령도 만나고 모스크바와 자신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 벨라루스 등을 자유롭게 오간 것은 푸틴 대통령이 그를 용서했기 때문인데, 용서 뒤 잔혹하게 살해하는 것은 전형적인 러시아 마피아식 수법이라 서방 언론들이 곧 이런 프레임으로 보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음모론의 갈래에는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프리고진 대표가 용서받은 것에 분을 삭이던 쇼이구 국방장관의 개인적 복수”라는 의혹도 있다. 유사하지만 “푸틴이 크리미아와 돈바스 영토를 지키기 위해 프리고진 대표가 제물로 바치고 평화협상에 이르는 수순”이라는 시각도 있다.

◆우크라이나 개입 음모론도

반면 8월 24일이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이라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전용기가 당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 러시아 언론인은 자신의 SNS에 “푸틴이 프리고진 대표를 제거하려고 한 게 분명하다면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인 24일을 D-Day로 택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푸틴과 같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기가 복수한 것을 적국 우크라이나가 좋아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푸틴은 모두 혼란에 빠뜨리는 것보다 자신의 강함, 권력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을 훨씬 선호하는 타입”이라고 덧붙였다.

[바흐무트=AP/뉴시스] 프리고진 홍보부가 5일(현지시간) 공개한 사진에 러시아 민간 용병단체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곳에 부대원들과 모여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프리고진은 바흐무트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흐무트=AP/뉴시스] 프리고진 홍보부가 5일(현지시간) 공개한 사진에 러시아 민간 용병단체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곳에 부대원들과 모여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프리고진은 바흐무트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 사고와 연관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는 “제게 이에 대해 물어봤던 것을 아마 기억할 것”이라고 이날 CNN 기자에게 말했다. 이는 지난달 프리고진 대표가 실패한 반란 이후 자신의 신변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고 말한 발언을 시사한다.

또 그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실은 모르지만 놀랍지 않다”고 말한 점에서 미리 사고를 미리 인지했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 문제와 연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답을 알기에는 사건에 대한 사실이 너무 부족하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전용기 추락사고 지점이 푸틴 대통령의 거주지역인 발다이 인근이라는 점, 2번째 전용기의 존재 등은 여전히 프리고진 대표가 아프리카에 건재하게 살면서 바그너의 현지 작전을 지휘할 것이라는 음모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러시아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안전하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2번째 전용기에 누가 탑승했는지가 관건인데, 해당 정보는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고 러시아 국내외 미디어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용병 기업 바그너 수장 프리고진은 누구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전에서만 최대 5만명이라는 대규모 용병들을 투입한 용병 기업이다.

그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대표는 사기 혐의로 체포돼 복역한 범죄자로 알려졌다. 출소 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에서 핫도그를 팔았는데, 이후 점점 사업 영역을 넓혀가며 고급 레스토랑을 차렸다. 이때 당시 부시장을 지내던 푸틴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러시아 정부와 군의 출장급식 사업을 도맡으면서 ‘푸틴의 요리사’로 알려지게 됐다.

반란 후 철수하면서 사진 찍는 프리고진. (AP/연합뉴스)
반란 후 철수하면서 사진 찍는 프리고진. (AP/연합뉴스)

그가 이끄는 바그너 그룹도 5만명 중 약 4만명이 교도소에서 모집한 죄수 용병인 것으로 추산됐다. 러시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힘입어 지난해 중반부터 러시아 전역 교도소를 돌며 자칭 ‘특수군사작전’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6개월간 싸우고도 살아오면 사면과 자유를 주겠다고 약속하면서다. 당시 모집 대상에는 단순 사기와 강도뿐 아니라 살인과 강간 등 중범죄를 저지른 죄수들도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너 그룹은 동부 전선에서 일부 성과를 내면서 권력 실세로 떠올랐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외에도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에도 일부 참여하고 있다.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 외에도 지난 2015년 시리아에서 알 아사드 정권을 도와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를 격퇴했고,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에도 참여하는 등 영향력을 지속 넓혀왔다. 리비아를 포함해 말리·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일대에선 다이아몬드·금 광산 사업까지 손을 뻗고 있다.

그러다가 프리고진 대표는 돌연 수만명 규모의 용병들을 내세워 그동안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를 향해 총구를 돌리며 반란 사태를 일으켰다. 당시 무서운 속도로 북진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조차 뚫지 못했던 러시아 ‘심장’ 모스크바까지 단 하루 만에 뚫릴 뻔했지만, 양측이 한발씩 물러서는 극적 타협이 이뤄지면서 결국 ‘하루 천하’로 일단락됐다.

이후 반란을 일으킨 프리고진 대표는 오히려 러시아가 전술핵까지 배치시킨 혈맹국 벨라루스로 전방 이동했다. 반역자를 용서하지 않는 푸틴 대통령의 성향상 프리고진 대표를 암살할 가능성이 지속 제기돼 왔다.

무장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간) 점령 중이던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하면서 주민과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무장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간) 점령 중이던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하면서 주민과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