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남아공서 대면 회담
중러, 미 달러 패권에 도전장
인도·브라질, 중러와 엇박자
경제-지정학적 블록 간 ‘고심’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헤게모니의 대항마로 떠올랐던 브릭스(BRICS, 신흥 5개국)가 반(反)미 반서방 연대 구축을 놓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사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화상으로 연설하는 모습. 앞서 푸틴 대통령은 “브릭스 정상회의에 가 있는 것보단 러시아에 남아있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대면 회의 대신 화상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AP/뉴시스) 2023.08.23.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헤게모니의 대항마로 떠올랐던 브릭스(BRICS, 신흥 5개국)가 반(反)미 반서방 연대 구축을 놓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사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화상으로 연설하는 모습. 앞서 푸틴 대통령은 “브릭스 정상회의에 가 있는 것보단 러시아에 남아있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대면 회의 대신 화상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AP/뉴시스) 2023.08.23.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G7의 경제 규모를 능가하는 등 무섭게 성장하면서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헤게모니의 대항마로 떠올랐던 브릭스(BRICS, 신흥 5개국)가 반(反)미 반서방 연대 구축을 놓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22~24일(현지시간) 브릭스가 4년 만에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대면 정상회의를 개최한 가운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첫날 “우리는 G7, G20 또는 미국에 대항하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 자체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등 외신이 전했다. 또 룰라 대통령은 주로 남반구에 있는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조직화할 생각이나 선진국들과 경쟁할 의도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전쟁 상황으로 회의에 불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영상을 통해 “우리의 경제 관계에서 탈달러화라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미 달러 패권에 맞서 미 일극이 아닌 ‘다극 체제’를 구축하려는 그간의 행보를 공고히 했다.

이날 러 스푸트니크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브릭스가 세계 다수를 대표하며, 식량·에너지 협력 통해 탈(脫)달러를 주도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앞서 “브릭스 정상회의에 가 있는 것보단 러시아에 남아있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대면 회의 대신 화상으로 참석하겠단 뜻을 크렘린궁(대통령실)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샌튼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3.08.23.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샌튼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3.08.23.

이러한 의견차를 두고 브릭스라는 블록 내에서 서로 간의 비전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 분석가들은 브릭스가 신흥국이라는 경제블록으로 남아있을지 서방에 맞서는 지정학적 블록으로 확장할지를 놓고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날 아침 남아공에 이미 도착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요 행사인 비즈니스포럼과 만찬에 예고 없이 불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날 시진핑 주석은 불참한 비즈니스포럼에서 왕원타오 중국 상무장관 대독을 통해 미국의 패권주의 성향을 비판했다. 이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금 세계, 우리 시대, 그리고 역사의 변화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인류 사회를 중대한 분기점으로 가져오고 있다”면서 “역사의 흐름은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 의해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미국은 세계 문제와 금융시장에서 자국 지배력을 위협하는 국가들과 싸우는 경향이 있다”면서 “모든 국가는 발전할 권리가 있으며 모든 국민은 행복한 삶을 추구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미국을 가리켜 “패권 유지에 집착하는 한 나라가 있는데, 신흥시장과 개발도상국을 무력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며 “먼저 개발하는 이는 봉쇄 대상이 되고 따라잡는 이는 방해 대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포럼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 중국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놀란 기색을 보이는 데다 뭔가 잘못된 게 아니냐는 반응까지 내놓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했다.

게다가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으로 다시 취임한 이후 미국·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회복했다고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불참했지만 최근 들어 반서방 대열에서 더욱 밀착 행보를 보이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면전에서 들었다면 표정 관리하기가 난처했을 만한 내용이다.

최근 미국과 더욱 가까워진 인도도 중러와는 다른 결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가 서방에 여전히 친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지만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인도는 올해 새로 취임한 룰라 대통령의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서방에 점점 더 손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인도와 중국은 분쟁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충돌하면서 갈등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파열음을 아는 듯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내달 7일 인도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대일로 프로젝트(一帶一路: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축사업)나 무역 정책에 대한 견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다만 5개국 중 마지막 남아공의 경우 중국과 뜻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이날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양자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브릭스 확대에 관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이러한 파열음에도 30개국 정도가 브릭스에 가입하려는 뜻을 내비치고 있는 만큼 브릭스는 언제든 서방의 대항마로 떠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벨라루스·베네수엘라 등이 추가로 가세한다면 브릭스가 러시아와 중국의 동맹국까지 포용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영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내다봤다.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AFP/연합뉴스) 2023.08.23.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AFP/연합뉴스)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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