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크림 포함 영토 20% 차지
나토, 영토 포기 방안 첫 제안
우 “절대 수용 불가능한 제안”
러 “키이우까지 내줘야” 도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 사무총장이 20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회담한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4.20 (키이우/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 사무총장이 20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회담한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4.20 (키이우/뉴시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가 나토 가입을 원하는 우크라이나에 현재 잃은 영토를 포기하면 가입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다.

러시아가 차지한 돈바스와 자포리자, 헤르손 등 20%에 달하는 영토를 포기하라는 건데, 우크라이나는 즉각 격분하는 반응을 보였고 러시아는 수도까지 포기해야 할 것이라는 한술 더 뜨는 반응을 내놓는 등 입장 차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나토가 공식적으로 이번 가입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인지를 두고서도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나토 “러에 영토 주고 가입” 발언 논란

나토 사무총장실의 스티안 옌센(Stian Jenssen) 국장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노르웨이에서 열린 패널 토론에서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포기하는 대가로 나토 동맹에 가입하는 방안이 있다”며 “다만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원하는 시기와 조건을 결정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내주는 대가로 나토 동맹 가입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 전쟁을 종식하자는 제안인데, 나토 고위관계자에서 영토 포기 조건부 가입 방안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토는 기구의 성격상 전쟁 중인 상태에서 우크라이나를 가입시키면 유럽·서방 대 러시아 간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만큼 이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는 나토 조약 제5조 등 집단방위 규정으로 인해서다. 나토 헌장 제5조는 ‘회원국 일방에 대한 무력 공격을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필요 시 무력 사용을 포함한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옌센 총장은 이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분쟁 이후 특정 영토의 가능한 상태에 대한 논의가 이미 진행 중”이라고도 말했다. 러시아는 작년 2월 침공한 이래, 2014년 강제 합병한 크림(크름)반도를 제외하고도 10만3600㎢의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하고 있다. 전체 우크라이나 영토의 17%에 육박한다.

이 발언이 노르웨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우크라이나는 즉각 반발했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회의 사무총장은 곧바로 옌센 국장의 발언을 “이상한 스로인(throw-in)”이라고 비난했다. 축구 경기장 좌우 외곽선에서 손으로 자기편에 공을 던지는 ‘스로인’을 가리키는데, 자기편(나토와 우크라이나)이 아닌 상대편(러시아)에게 공을 던지는 꼴이라는 반발이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도 이날 “우크라는 나토 동맹에 가입하기 위해 영토를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레흐 니콜렌코 외무부 대변인 역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면서 “우리 영토 포기에 대한 담론 형성에 참여하는 나토 관계자들은 러시아에 농락당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서방 매체들은 이날 나토 소식통을 인용해 “나토는 예센 국장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현재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가 20%에 육박하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차지한 상태에서 대대적인 반격을 통해 영토 수복을 이루고 승리한 상태에서 종전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이는 협상과 타협을 통한 종전이 급선무라는 제3국들과 교황의 평화안과 상충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교황이나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만났을 때도 러시아군 철수, 우크라이나 영토 회복 등 10개의 공식을 내건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에서의 기존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크라 반발에 하루 만에 철회

결국 예센 국장은 불과 하루 만에 자신의 발언을 번복하고 사과했다.

그는 16일(현지시간) 노르웨이 매체 베르덴스 강(Verdens Gang)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가능한 미래 시나리오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의 일환으로 그것(러시아 영토 인정 조건부 나토 가입)에 대해 말했다”고 인정하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명백한 나의 오류”라고 사과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이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이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지난 2017년 11월 15일(현지시간) 이스트라에 있는 신 예루살렘 부활 수도원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총리와 방문하고 있다. (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지난 2017년 11월 15일(현지시간) 이스트라에 있는 신 예루살렘 부활 수도원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총리와 방문하고 있다. (AP/뉴시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아침 베르덴스 강의 관련 보도와 관련,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포기하는 대가로 동맹국이 될 수 있다는 나토 관리의 제안에 대한 보도는 정확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러시아는 한술 더 뜨는 방식으로 이런 논의 가능성 자체를 부인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전보장이사회 부의장은 예센 국장의 최초 발언 당일인 15일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려면 수도 키이우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우크라이나가 분쟁 영토를 포기하면 나토에 가입할 수 있다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흥미롭긴 한데, 사실 우크라이나 영토 모두가 해당하는 것 아닌가”라고 적었다.

지난달 11일부터 12일까지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의 결과, 나토는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을 나토 동맹에 더 가깝게 만들기 위한 3가지 정책 패키지에 합의했다. 우선 나토식 군사표준과 훈련, 교리로 전환하기 위한 우크라이나 지원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첫 번째다. 두 번째 요소는 나토-우크라이나 위원회의 설립, 세번째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절차를 두 단계에서 한 단계로 단축할 수 있는 회원국 행동계획의 예외적용 관련 사항이다. 다만 나토는 이런 논의를 곧바로 우크라이나를 나토 회원국으로 공식 초청하는 것으로 확대하지는 않았다.

◆“美, 나토 구심 군사안보 추진”

러시아에서는 미국이 나토라는 군사 안보체제를 지구촌 전체 군사동맹의 틀로 활용할 청사진을 서서히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오는 18일(현지시간) 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릴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세계 안보와 동아시아 한미일 군사협력을 연계시키는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열린 제11차 모스크바 국제안보회의에서 “서방 국가들은 호주와 영국, 미국 간의 오커스 안보 협정에 나토군을 통합할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문제가 나토군과 오커스 군사 블록 구조의 완전한 통합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커스(AUKUS)는 호주(A), 영국(UK), 미국(US) 세 국가가 2021년 9월 15일 공식 출범한 삼각 동맹을 말한다. 

오커스 협정에 따라 발표된 첫 번째 협력 이니셔티브는 호주 왕립 해군을 위한 원자력 잠수함 기술을 개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호주 정부는 당시 약 660억 달러(약 90조원)에 이르는 디젤 전기 잠수함 건조 계약을 프랑스 해군 그룹과 맺었는데, 오커스 협정에 따라 이를 포기, 프랑스가 강력히 반발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오커스와 같은 개념과 방식으로 한미일 군사협력이 나토와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미국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존 커비 미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6일(현지시간) “18일 한미일 3자 정상회담에서 나토와의 어떤 동맹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정상회담에서 일본과 나토의 긴밀한 통합에 대한 논의가 있을 예정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토와 한미일 군사협력 제휴에 대해 입증할 수 있는 논의를 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커비 조정관은 "러시아의 곡물협정 중단은 식량 부족을 악화하고 전 세계 취약계층을 위험에 빠트린다"라며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종료 선언을 규탄했다. (AP/뉴시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커비 조정관은 "러시아의 곡물협정 중단은 식량 부족을 악화하고 전 세계 취약계층을 위험에 빠트린다"라며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종료 선언을 규탄했다. (AP/뉴시스)

이어 “나토와 일본의 긴밀한 통합에 대한 논의는 동맹의 맥락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며, 3자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해 긴 논의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3자 정상회담이 인도-태평양에만 국한되지 않지만 지역 안보와 안정, 경제적 기회에 매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8일 윤석열 한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워싱턴 D.C 외곽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 3국 정상회담을 진행한다. 한미일 정상회담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건 지난 2015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깜짝 지지 방문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깜짝 지지 방문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출처: 뉴시스)
11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개막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 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뉴시스)
11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개막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 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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