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방 빛 한줄기 들지 않아
수감자에 주는 밥 등급 매겨
운동 공간 ‘격벽장’도 감시망
유관순 열사 수감 8호 감방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을 찾은 시민들이 옥사를 둘러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8.1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을 찾은 시민들이 옥사를 둘러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8.14.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사형당한다는 예고가 없었어요. ‘277번 나와’ 하면 (수감자가) 간수한테 끌려서 나오다가 여기서 우회전하면 죽음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저기가 사형장이니까요. 그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바닥에 주저앉습니다. 그럼 일본 간수가 사형장으로 끌고 들어갔다고 해요. 수감자들은 이 나무를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불렀습니다.”

지난 13일 찾은 서울 서대문형무소 내 사형장 앞에는 커다란 미루나무가 쓰러져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의 수많은 통곡을 지켜봤을 이 나무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에 태풍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이날 광복절을 맞아 ‘2023 서대문 독립축제’가 서대문형무소와 독립공원에서 열렸다.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 단위 관람객으로 일대가 북적였다. 독립공원에는 강우규, 어윤희, 윤봉길, 백범 김구 등 독립운동가의 초상이 일렬로 나란히 전시돼 영웅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날 배정희 전문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시민들과 함께 독립운동가의 옥중 생활 자취를 더듬어봤다.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서울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옆에 ‘통곡의 미루나무’가 쓰러져 있다. ⓒ천지일보 2023.08.14.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서울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옆에 ‘통곡의 미루나무’가 쓰러져 있다. ⓒ천지일보 2023.08.14.

처음 들른 곳은 10, 11, 12옥사였다. 1922년경 지어진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옥사는 독립운동가들이 겪었을 고난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간수를 부르는 신호기인 ‘패통’과 식구통 만이 외부로 연결돼 있었다.

식구통으로 들어가는 밥의 양은 수감자에 따라 1~9등급으로 달라졌다. 밥을 담는 ‘가다’ 틀에 등급별로 다른 크기의 나무토막을 넣은 뒤 남은 공간에 밥을 넣었다. ‘사상범’으로 분류된 수감자는 5등급의 밥의 양을 받았다. 이는 약 270g으로, 시중에 판매하는 즉석밥보다 약간 많은 정도다. 이 중 쌀은 10%, 잡곡과 콩이 90%였다. 사상범은 간수가 식구통으로 던져주는 밥을 흘리지 않고 받으려고 대기했지만 허실 없이 받아먹기란 어려웠다.

12옥사에는 3칸으로 된 ‘징벌방’이 있었다. 한 평 크기의 독방은 몸을 겨우 누일 수 있을 정도였다. 독방 문을 닫고 바깥쪽 문까지 닫으면 빛 한줄기 들지 않을 정도로 깜깜해 ‘먹방’으로도 불렸다. 독방 수감자는 용변통에 용변을 봐야 했다. 간수들은 용변통을 제대로 치워주지 않았다고 한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특별기획전시 ‘광복의 그날,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있다. 다음달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1945년 8월 16일 출옥한 독립운동가들이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만세를 부르던 사진에서 착안했다. ⓒ천지일보 2023.08.1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특별기획전시 ‘광복의 그날,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있다. 다음달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1945년 8월 16일 출옥한 독립운동가들이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만세를 부르던 사진에서 착안했다. ⓒ천지일보 2023.08.14.

수감자들은 기상 후 한 시간 뒤부터 바로 공장에서 노역했다. 옥사에서 나와 공장에 들어갈 때는 관문을 거쳐야 했다. 수임자들은 수인복을 벗고 수건 한 장으로 중요 부위를 가린 채 입을 벌리고 ‘아’ 소리를 내면서 허들을 뛰어넘어야 했다. 어떠한 물건도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서대문형무소 공장에서는 주로 옷감과 실을 만들었다. 당시 일제가 ‘경성 감옥’이라 부르던 마포형무소에서는 ‘京(서울 경)’ 자가 새겨진 벽돌을 찍어냈다. 서대문형무소 건물도 이 벽돌로 지어졌다. 형무소 건물을 1/3가량 축소하는 과정에서 나온 벽돌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일본 간수들은 수감자들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격벽장’에서 운동을 시켰다. 그러나 어떠한 시설이나 기구 없이 빨간 벽돌로 만든 벽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게 전부였다. 수감자들은 운동하는 중에도 간수의 감시망을 피할 수 없었다. 간수는 격벽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올라가서 수감자 사이에 불필요한 소통이 있는지 감시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특별기획전시 ‘광복의 그날,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있다. 다음달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1945년 8월 16일 출옥한 독립운동가들이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만세를 부르던 사진에서 착안했다. ⓒ천지일보 2023.08.1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특별기획전시 ‘광복의 그날,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있다. 다음달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1945년 8월 16일 출옥한 독립운동가들이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만세를 부르던 사진에서 착안했다. ⓒ천지일보 2023.08.14.

나병 환자를 격리한 ‘한센병사’를 지나 사형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형수는 일본식 목조건물로 된 사형장에 들어가 의자에 앉는다. 밧줄이 목에 걸리고 얼굴에는 베일이 씌워진다. 간수가 레버 장치를 잡아당기면 의자 밑 개폐식 마루판이 열리며 10분 안에 사형수의 목숨이 끊어진다. 대기하고 있던 의사와 관리가 내려가서 사망 여부를 확인한 뒤 시신을 끌고 나와 시구문 밖에 버렸다.

마지막으로 마주한 곳은 여옥사였다. 서대문형무소에서 격벽장과 창고, 여옥사만 복원된 건물이다. 여옥사 8호 감방은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곳이기도 하다. 감방 내부에는 지하 고문실로 연결된 문이 있었다. 유관순 열사는 수감 당시 심한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유관순 열사는 순국할 당시 부모와 오빠를 독립운동으로 잃은 상황이었다. 유관순 열사의 시신은 이화학당 교장이 이태원 공동묘지에 임시로 묻었다. 이후 일제에 의해 망우리 공동묘지로 옮겨졌으나 시신은 유실됐다.

배 해설사는 “학교에서 배웠지만 실제로 서대문형무소에 와서 독립운동가들이 체포되고 수감된 과정에서 많은 고통이 따랐다는 걸 들은 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 서대문독립문공원 일대에서 ‘2023 서대문독립축제’가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8.1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 서대문독립문공원 일대에서 ‘2023 서대문독립축제’가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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