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김영환 충북도지사 소환투표가 추진되고 있다. 깃발을 든 사람들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 책임과 무책임한 언행으로 신뢰 추락’을 이유로 들고 있다. 오송 참사는 대비하고 점검하고 당일 잘만 대처했더라도 날 수 없는 참사였다.

김영환 지사는 소환투표가 제기되기 전에 스스로 사임하는 결단을 내리고 “앞으로 나처럼 주민의 안전과 생명을 소홀히 다루는 공직자가 다시는 안 나오기 바란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떠나는 모습을 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국민의힘 소속 충북도의원 일동 이름으로 8일 성명이 나왔다.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주민소환제를 당리당략 목적으로 악용하는 행태”라 했다. 국민의힘 청주 흥덕 당원협의회는 기자회견까지 열어 “행정 공백과 천문학적 비용은 결국 국민의 혈세로 감당해야 하고, 도민 분열도 불 보듯 뻔하다”며 비판했다.

주권자의 주권 실행 행위에 대해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자 주권자 무시 행위이다. 필자는 ‘소환투표 중단 요구’를 즉시 멈추고 주권자의 판단을 기다리는 자세를 보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에는 주민소환제가 도입돼 있다. 유권자의 1/10이 주민투표에 찬성하는 서명을 하면 투표에 부치게 된다. 유권자의 30% 이상이 투표해야만 개표를 할 수 있고 투표 참여자의 과반수를 얻으면 통과된다. 보기에는 쉬울 것 같은데 소환이 결정되기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그동안 124건의 소환 시도가 있었지만 실제 투표에 돌입된 경우는 11건밖에 안 되고 소환된 공직자는 2명뿐이다.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권리를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지방 자치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민주주의의 꽃은 직접 민주주의다. 주권자 한 명 한 명이 직접 주권을 행사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현대 민주주의는 간접 민주주의 위주로 운영돼 왔다. 인구가 많아 주권자 한 명 한 명이 의사 표현을 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대리자를 뽑아 위임하는 형식을 취한다.

대리자가 주권자의 의사를 정확히 대리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접어야 한다. 대리자 역할을 하라고 뽑아준 피위임자가 주권의 위임에 충실하지 않고 당파를 형성하거나 주권을 위임받은 또 다른 피위임자와 담합해 주권자의 의사를 왜곡하고 심지어 주권자가 위임한 범위를 넘어서거나 일탈 행동을 하는 경우가 너무도 흔하다. 주권자가 아니라 기득권자를 대변하는 게 일상사다.

주권자가 자신의 권한을 위임할 때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 안전, 의식주와 자아실현의 조건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만약 위임받은 자가 이 같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위임을 철회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위임을 거둘 수 있는 절차가 없거나 너무나 까다로워 위임을 철회하기가 어렵다면 그런 사회는 권위주의 내지는 독재 체제라 불러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됐다는 말들을 하지만 주권자가 위임한 임무를 내팽개치거나 위임한 취지에 역행하는 행위를 하는 피위임자에 대해 위임을 철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권자의 간접 지배, 곧 대의제라는 토양 속에서 배태되는 피위임자의 주권자 배신행위는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다. 지방자치제의 소환제는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 위임 철회가 여의치 않은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피위임자를 심리적으로나마 긴장하게 하고 행동을 조심하게 하는 간접적인 효과를 낳고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경우 주권자가 직접 소환할 수 있는 제도가 전무한 상황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주권자의 직접 선거를 거쳐 선출됐음에도 주권자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은 소환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선출직 공직자가 위임받은 권력을 위임한 대로 쓰지 않고 자의적으로 행사하거나 사명을 저버리면 현직에서 쫓겨난다는 경험이 축적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소환제의 까다로운 절차를 완화함은 물론 대통령과 국회의원 소환제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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