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키이우서 니제르로
‘천연가스’에서 ‘우라늄’으로
에너지 패권 전쟁 물결 ‘출렁’
쿠데타에 둘로 쪼개진 니제르
서방·러시아 대리전 일촉즉발

[AP/뉴시스] 30일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군부 쿠데타 지지 시위가 펼쳐진 가운데 러시아 국기를 들고 푸틴 대통령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 2023. 07. 30.
30일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군부 쿠데타 지지 시위가 펼쳐진 가운데 러시아 국기를 들고 푸틴 대통령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 2023. 07. 30. (AP/뉴시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니제르 군부 세력이 현 정권을 향해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시위가 격화하면서 서아프리카 일대에서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각국과 미국 등 서방의 탈출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반면 시위대 사이에선 러시아 국기와 ‘러시아 만세’ 구호까지 등장하는 등 국민들 사이에서 친러시아-친서방 대립 구도가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양 진영 간 대리전으로 번질 위기에 놓이면서 니제르 사태가 제2의 러시아-우크라이나전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현지시간)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가 군부에 모하메드 바줌 니제르 대통령을 복권하라 경고한 시한(6일)이 만료된 이후 군부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자국 영공을 폐쇄한 상황이 이어지는 중이다.

현재 대통령을 가두고 총을 잡은 군부 세력이 과거 식민지배국 프랑스를 강력 규탄하고 나선 만큼, 현재로선 반서방 여론과 이에 대한 반사효과로 친(親) 러시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최근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는 아프리카 대표 친서방 국가인 나이지리아에 “니제르에 대해 개입하라”고 승인했다. 친서방과 반서방의 전쟁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프랑스와 서방은 니제르의 수도인 니아메에서 시작된 반서방 물결이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차드와 같은 국가들과의 공동전선으로 퍼져 서방의 영향력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이 형성될까 봐 조기 대응에 나서는 형국이다. 서방 국가들은 아프리카에서 서방의 전위 노릇을 해온 니제르 인접 나이지리아를 최전선에 앞세워 프랑스가 주도하는 서아프리카제국경제공동체가 군사행동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서아프리카 화약고 된 니제르

니제르는 카자흐스탄에 이어 유럽에 2번째로 우라늄을 많이 수출하는 나라다. 프랑스 식민지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해방된 이후에도 유럽 원전 강국인 프랑스에 우라늄을 공급하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최근 쌓여있던 반제국주의 봉기가 터져 나와 군사쿠데타로 이어졌다.

26일(현지시간) 서아프리카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쿠데타 세력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이 위협사격에 달아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서아프리카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쿠데타 세력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이 위협사격에 달아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에너지 수요의 75%를 원자력에 의존하는 프랑스는 니제르 우라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프랑스로 수입되는 우라늄의 20%가 니제르 산이다. 문제는 가격인데 프랑스는 우라늄 국제시장가격은 파운드당 56.23 미국 달러인 반면 프랑스는 니제르 우라늄을 파운드당 이보다 11달러나 싸게 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국영원전기업인 오하노(Orano)는 니제르 소재 3개 우라늄 광산 지분의 90%를 소유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다. 북부 니제르 사막의 광산은 오하노가 지분 63.4% 소유한 소마르(Somair)가 운영한다.

이곳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도 우라늄 광산이 있었는데, 40년간 채굴 결과 우라늄이 고갈되면서 지난 2021년 3월 문을 닫았다. 이곳 역시 오하노가 지분을 59% 소유한 꼼빠냐 미네레 다코다(Compagnie minière d’Akouta)가 재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밖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우라늄 광산 중 하나인 니제르 소재 임모라렌(Imouraren) 광산도 오하노가 지분 63.52%를 보유 중이다.

오하노는 최근 반프랑스 세력의 군사쿠데타에도 지난 3일 “니제르에서 광산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쿠데타 속 자리 잡은 에너지 패권

큰 그림을 보면 에너지 패권이 보인다. 에너지 패권과 관련한 니제르 상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상황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중 하나가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해저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10년 공들여 이뤄놓은 노르트스트림을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일거에 중단시킨 점이 눈에 띈다. 노르트스트림이 파괴되는 장면을 지켜본 프랑스는 표정 관리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에서 원자력 공조를 해왔던 독일이 프랑스에 등 돌리고 탈원전한 뒤 러시아 가스를 절반 가격에 수입해 가스발전으로 선회했기에, 이런 구도가 풍비박산 나는 장면을 지켜보며 웃음 아닌 웃음을 지었다는 해석이다.

그런데 이번 니제르 사태에서는 일각에서 그런 프랑스가 미국이라는 큰손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안정적인 우라늄 공급국인 니제르가 흔들리면 1위인 카자흐스탄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더욱 심화된다. 유럽에 우라늄을 많이 수출하는 3위(캐나다)와 4위(러시아), 5위(우즈베키스탄)들은 매출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9월 27일(현지시간) 덴마크 국방사령부가 공개한 이 사진은 뒤오드데 남쪽의 덴마크 발트해 섬 보른홀름 인근 노르트스트림 2 가스관의 가스 누출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탐사전문 기자 허쉬가 배후로 미국을 지목한 보도를 한 가운데 미 백악관은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출처: AFP, 연합뉴스)
지난해 9월 27일(현지시간) 덴마크 국방사령부가 공개한 이 사진은 뒤오드데 남쪽의 덴마크 발트해 섬 보른홀름 인근 노르트스트림 2 가스관의 가스 누출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탐사전문 기자 허쉬가 배후로 미국을 지목한 보도를 한 가운데 미 백악관은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AFP/연합뉴스)

원전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은 최근 몇 년간 미국으로부터 미국산 우라늄 수입을 늘리라는 암묵적인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산 우라늄 의존도가 약 40%에 이른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독일의 값싼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 구조를 보기 좋게 깨부쉈다. 미국산 천연가스(셰일) 유럽 점유율은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는 러시아 나름대로 파이프라인을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 쪽으로 터서 중국이라는 큰 고객을 맞이했다. 프랑스의 손해는 미국과 러시아의 이익으로 연결될 전망이다. 이번 니제르발 아프리카 전쟁을 통해 프랑스를 보기 좋게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아프리카와 연결된 러-우크라 전쟁

러시아가 아프리카 등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의 곡물 안전 통행을 보장하는 흑해 곡물 협정을 일방적으로 깬 뒤로 흑해가 군사적·지정학적으로 긴장의 ‘가마솥’이 되고 있다. 이 일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수출 길목을 지키는 튀르키예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와 미국 등 모두에게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외교가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역에서 전개되는 전쟁이 폴란드 등 주변국으로 번지고, 흑해 주변 국가들까지 분쟁에 휩싸이면서 아프리카까지 지정학적 위험이 발현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더 자주 등장하고 있다.

흑해는 전쟁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아프리카로 향하는 지중해와의 연결 길목을 지키는 튀르키예를 포함해 루마니아·불가리아 등 나토 3개국과도 접해있다. 흑해를 둘러싸고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조지아·몰도바 등 나토 파트너국 5개국도 포진해 있는 구조다.

흑해가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보복전이 격화하면서 군사적·지정학적 긴장의 ‘가마솥’이 되고 있다. 이 일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수출 길목을 지키는 튀르키예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와 미국 등 모두에게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크림대교가 폭발한 이후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러시아군 상륙함이 케르치해협에서 항해하는 모습. (AP연합뉴스) 2023.08.09.
흑해가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보복전이 격화하면서 군사적·지정학적 긴장의 ‘가마솥’이 되고 있다. 이 일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수출 길목을 지키는 튀르키예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와 미국 등 모두에게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크림대교가 폭발한 이후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러시아군 상륙함이 케르치해협에서 항해하는 모습. (AP/연합뉴스) 2023.08.09.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정부는 해안가 항구와 휴양 도시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남부 해군기지에서 군사력을 강화해왔다. 흑해에 대한 지배권은 러시아의 명백한 전쟁 목표로, 러시아가 크림(크름)반도를 합병한 이유 중 하나로도 꼽힌다.

국제법의 핵심 원칙 중 하나인 ‘해상 자유 항해’를 지지하는 나토도 이를 지키면서도 러시아군과 직접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을 맞이했다. 나토는 지난달 이사회 이후 감시 비행과 항공 경찰력을 증강시켰다고 발표한 상태다. 나토 회원국들은 영토와 영해, 흑해 상공에서 공중감시·경찰 임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교전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아프리카 내 패권 관련해서는 러시아에 반기를 들었다가 지금은 오히려 러군의 ‘칼과 창’으로 활용되고 있는 러시아 민간군사회사(PMC) 바그너 그룹도 빠질 수 없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전선에서 나토 방면의 벨라루스로 오히려 ‘전면 배치’된 바그너그룹은 지금처럼 아프리카에서 분쟁이 확산할 경우 추가적인 병력 파견이 불가피하다. 아프리카 반서방 국가들의 강력한 요구사항이기 때문이다.

그간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 외에도 석유·가스·광산 산업 계약 등 에너지 패권을 노리며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지속 넓혀왔다. 지난 2015년 시리아에서 정권을 도와 무장 단체 IS를 격퇴했고,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모잠비크·시리아·리비아 내전에도 참여하며 이권을 노린 정권 유지에 깊이 관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주변국으로 번지고 있다. 러시아 본토에서 떨어져 있는 러시아 영토 칼리닌그라드 주변 국가들이 발트해 지역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면서다.

러시아 지정학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는 러시아의 절박한 상황을 미국이 그냥 넘어갈 리 없다고 보고 있다. 전쟁 자체에서는 러시아가 단기 기동전 대신 중기 소모전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병력과 군사 장비를 완전히 파괴하는 데 성공했지만, 경제제재라는 전략무기를 가진 미국은 진짜 장기전을 통해 러시아를 완전히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니제르 군부가 26일(현지시간) 수도 니아메에서 국영TV를 통해 성명 발표를 하고 있다.(니제르 국영방송 ORTN) ⓒ천지일보 2023.07.27.
니제르 군부가 26일(현지시간) 수도 니아메에서 국영TV를 통해 성명 발표를 하고 있다.(니제르 국영방송 ORTN) ⓒ천지일보 2023.07.27.
[니아메=AP/뉴시스] 니제르 군부 쿠데타 지도자인 모하메드 툼바 장군이 6일(현지시각) 수도 니아메에서 열린 친 쿠데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니제르 군부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가 촉구했던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 복권 시한을 넘기면서 군사 개입 가능성이 대두되자 자국 영공을 폐쇄했다. 군부는 성명을 통해
[니아메=AP/뉴시스] 니제르 군부 쿠데타 지도자인 모하메드 툼바 장군이 6일(현지시각) 수도 니아메에서 열린 친 쿠데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니제르 군부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가 촉구했던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 복권 시한을 넘기면서 군사 개입 가능성이 대두되자 자국 영공을 폐쇄했다. 군부는 성명을 통해 "외세의 내정 간섭 위협에 맞서 오늘부터 니제르의 영공을 폐쇄한다"라고 밝혔다. 2023.08.07.
서아프리카의 니제르 군부 쿠데타 지지자들이 지난 6일(현지시각) 수도 니아메에서 러시아 국기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니제르 군부 세력이 현 정권을 향해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로 국민들 사이에서 친러시아-친서방 대립 구도가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대리전으로 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AP뉴시스) 2023.08.10.
서아프리카의 니제르 군부 쿠데타 지지자들이 지난 6일(현지시각) 수도 니아메에서 러시아 국기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니제르 군부 세력이 현 정권을 향해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로 국민들 사이에서 친러시아-친서방 대립 구도가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대리전으로 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AP뉴시스) 202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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