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 비판 전문가 좌담회
“헌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8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7.27.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8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7.27.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 헌법재판소를 향해 전문가들이 “헌법이 아니라 법률과 매뉴얼로만 판단했다”며 결정 과정이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8일 광화문 변호사회관에서 ‘헌법재판소는 스스로를 탄핵했다’는 이름의 전문가 좌담회를 열고 헌재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 결정을 비판했다.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헌법적 책임을 전혀 묻지 않았다”면서 “이상민 탄핵 사건에서도 헌법을 재판하는 기관임에도 주로 법률의 해석과 적용에 머무름으로써 헌법을 한낱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헌법 위배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법률인 재난안전관리기본법만 기준으로 위배 여부를 들여다봤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헌법재판이 아니라 법원도 할 수 있는 법률 차원의 재판”이었다며 “헌법은 법관에게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판하도록 명령하고 있는데도, 헌법재판에서 심판 기준으로서 헌법을 삭제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지일보 2023.07.2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지일보 2023.07.25.

민변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TF’ 소속 천윤석 변호사는 한술 더 떠 헌재가 법률 해석도 아닌 ‘매뉴얼’ 해석에만 급급했다고 힐난했다.

천 변호사는 “헌재는 앞서 사고에 관한 기존 매뉴얼을 보면 이전 압사 사고들은 구조물이나 시설물과 관련돼 있었던 것이고 인파의 밀집이나 흐름을 유인하는 요소가 있었는데, 이태원 참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예방할 수 없었다고 판시했다”며 “매뉴얼에 열거된 형태대로 딱 그대로 정확히 일어난 재난에 대해서만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천 변호사는 “지진 같이 미리 예상하기 어려운 대형 자연재난의 경우에도 국가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수습하기 위해 다양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며 “어떤 재난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고, 다른 재난에 대해선 소극적으로 대처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헌재가 기각 이유로 내세운 ‘법 위반의 중대성’을 두고선 대통령이 탄핵 대상일 때만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헌재 연구관을 지냈던 김선휴 변호사는 “중대성은 탄핵소추대상자 중 오로지 대통령이 지니는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과 그 공백이 헌정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수용될 수 있는 요건”이라며 “대통령의 공백이 헌정질서에 가져오는 혼란과 손실은 장관의 공백이 가져오는 혼란·손실의 크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임기나 해임 사유도 정해져 있지 않은 장관의 파면에 대통령과 같은 중대성의 요구는 타당하지 않다는 취지다.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지일보 2023.07.25.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지일보 2023.07.25.

김 변호사는 “장관들은 헌재가 파면 허들을 매우 높게 세워둔 탓에 의도적으로 국가기능을 훼손하는 등 명백하고 현저한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수준이 아닌 한 자신의 헌법과 법률 위반에 대해 면죄부를 받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헌법도 국민도 아니고 자신의 임명과 해임의 권한을 쥐고 있는 대통령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쓰레기 같은 결정”이라며 강한 어조로 헌재 판단을 비난하기도 했다. 

한 교수는 “국민의 신임 여부에 관한 판단은 일차적으로 국회가 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그런데 국회를 일방 당사자에 불과한 지위를 부여하고 거기에 대해 헌재가 보다 높은 지위에서 판단하는 잘못된 위상을 가졌다”고 꼬집었다.

민변 10.29 이태원참사 TF 소속 임한결 변호사는 현장검증을 하지 않은 점, 희생자 유가족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은 점, 당사자인 이 장관 신문의 부재 등을 문제 삼으며 헌재가 충분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무책임하고 무능한 고위공직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이를 거부할 때, 국회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탄핵소추를 활용해도 헌법과 법률위반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소추가 어렵다”며 현행 제도 개선 필요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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