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째 두문불출에 결국 해임
7개월 만 해임에 ‘최단명 장관’
10년간 장관 맡았던 왕이 컴백
악화일로 한중관계 개선 기대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14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한국-중국 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담을 하고 있다. (외교부)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14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한국-중국 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담을 하고 있다. (외교부)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중국이 잠적으로 한 달째 행방이 묘연한 친강(秦剛) 외교부장(장관)을 해임하고 왕이(王毅) 전 외교부장을 다시금 장관 자리에 불러들였다. 경험이 풍부한 그를 다시 외교부장 자리로 복귀시킨 건 악화되는 미국과의 관계나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 관계, 한중관계 등 혼란스러운 정국에 외교 정책의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5일 베이징에서 회의를 열고 “친 외교부장을 해임하고 왕 위원을 외교부장에 임명했다”고 밝혔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이어 가디언과 CNN 등 외신이 26일 일제히 전했다. 기존 외교부장이 7개월도 차지 않은 채 해임된 일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전임자가 다시 외교부장에 임명된 일은 더욱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그간 친강 전 외교부장은 56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지난해 12월 장관 자리에 발탁된 데 이어 올해 3월 국무위원 자리에 오르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는 그에 대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두터운 신임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친강 전 부장이 자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하고 민심을 챙기는 일명 ‘전랑(戰狼, 늑대 전사) 외교’를 펼쳐오면서 시진핑 주석 눈에 들어 ‘초고속 승진’을 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그러다가 지난달 25일 이후 외교가에서 종적을 감췄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미 기후변화 특사 등 미국 고위관료들의 잇따른 중국 방문이 예정돼 있던 중요한 시기였다. 이에 따라 정치적 경쟁에서 도태됐다는 추측부터 건강 이상설, 비리 연루설, 불륜설, 사망설, 간첩설 등 여러 추측이 난무했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7일 베이징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연례회의를 계기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7일 베이징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연례회의를 계기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가 자리를 비우자 이달 중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불참해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과 만남이 무산되고, 당초 이달 말로 예정됐던 영국 외교장관의 방중이 취소되는 등 굵직한 외교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그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 ‘잠적’에 건강상의 이유를 들다가 이후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고만 해명해왔다.

그러나 결국 면직으로 귀결되면서 친강 전 부장이 불상사에 연루된 점이 사실상 확인된 셈이다. 이번 해임으로 친강 전 부장은 지난 1949년 현 중국 건립 이후 ‘최단명 외교부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혼란 정국 속 외교 안정화 꾀하나

그의 빈자리에는 예상을 뒤엎고 시진핑 외교 정책의 일인자로 꼽히는 왕이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당 외사판공실 주임이 다시 외교부장 자리에 복귀했다. 그는 올해 3연임 체제를 확정 지은 시진핑 주석 체제에서 이미 10년간 외교부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외교부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 당 차원에서 외교 정책을 지휘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이번 외교부 장관 전격 교체로 그간 냉각돼온 한중 관계도 다시 개선 가도를 밟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국익을 관철하는 ‘전랑 외교’를 펼친 친강 전 외교부장 대신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왕이 위원이 다시 중국 외교부를 지휘하게 되면서다.

실제 이달 열린 아세안안보포럼에서 잠적한 친강 전 부장 대신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과 한중 양자회담을 가진 왕이 위원은 “건강한 한·중 관계를 만들기 위해 양국이 모두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나가자”는 데 뜻을 함께했다.

아울러 이날 양국은 공급망 관리, 인적 교류 확대, 문화 콘텐츠 교류 활성화 등 가시적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적극 협력해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그간 대만 문제 등으로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는 등 악화일로를 걷던 한중관계가 다시 해빙 분위기로 전환될지 관심이 쏠린다.

이번 전격적인 인사발령으로 외신에서는 다양한 평가와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중국 정치 시스템에서 불투명함 등의 문제가 또다시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로이터는 “더욱 중요한 점은 중국 외교 시스템에서의 예측 불가능성과 불투명성이 드러났다는 점”이라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상태에서 한 달 동안이나 외교 정책이 블랙홀에 던져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평가한 미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중국 전문가의 분석을 전했다.

대만 중앙통신도 중국 내부적으론 인사가 마무리됐겠지만 외부에선 친강 전 부장의 잠적에 따른 여러 추측이 이어지고 있다며 그 여파를 지켜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중국은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장 인사도 단행했다. 이달 은행 내 당 조직인 당위원회 서기로 발탁됐던 판궁성 행장이 지난 3월 깜짝 연임하며 화제가 됐던 이강 전 행장을 대신해 신임 행장 자리에 올랐다. 판 행장은 중국 인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얻은 뒤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한 외환 전문가로 알려졌다.

왕이(王毅) 당시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2020년 2월 26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영빈관에서 이비카 다치 세르비아 외무장관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왕이(王毅) 당시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2020년 2월 26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영빈관에서 이비카 다치 세르비아 외무장관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박진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왼쪽)이 지난 14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한국-중국 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당시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박진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왼쪽)이 지난 14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한국-중국 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당시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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