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개암나무의 학명은 ‘Corylus heterophylla Fisch. ex Trautv.’이고 자작나무과의 개암나무속으로 우리나라는 난티잎 개암나무, 개암나무, 병개암나무, 참개암나무, 물개암나무가 분포하고 있다. 한문으로는 진(榛)이라 하고 그 열매는 진자(榛子)라고 한다.

개암이라는 이름은 밤보다 조금 못하다는 뜻으로 ‘개밤’이라고 불리다가 ‘개암’이 됐다고 한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깨금’이라고도 한다.

개암나무의 열매는 땅콩이나 호두의 맛처럼 고소해 지난날에는 과일로 이용됐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도 경상도·전라도·경기도·충청도·강원도에서 개암이 난다고 기록돼 있다.

열매는 식용한다. 사례로는 ‘고려사지(高麗史志)’의 길례 대사조에 보면 ‘제사를 지낼 때 제2열에는 개암을 앞에 놓고 대추, 흰떡, 검정떡의 차례’ ‘제 1열에는 소금, 건어, 대추, 황률, 개암, 말밤을 둔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개암나무에 관한 기록이 117건이나 나오는데 제물을 비롯해 우박의 크기를 개암나무 열매와 비교하는 등 오늘날 개암을 거의 쓰지 않는 것과는 달리 먹는 열매로서 널리 사용됐던 것 같다. 그러나 임진왜란 전후로 개암은 제사상에서 퇴출됐다. 아마 개암보다 더 맛있는 과일이 많이 들어온 탓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한편 옛날에는 모친상을 당했을 때 부인의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1자(尺) 길이의 전계(箭笄)를 개암나무로 만들어 꽂았다고 한다(삼산재집).

개암나무에 대해 1980년대 경남 진양군 금곡면 검암리 운문마을에서 채록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과 함께 어렵게 사는 한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은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잘 익은 개암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따 모으느라 날이 저무는 줄도 몰랐다. 당황한 소년은 허겁지겁 산을 내려오다 전에 보지 못한 허름한 기와집 하나를 발견했다. 소년은 그곳에서 밤을 새우기로 하고 마루 밑에 들어가 웅크리고는 잠을 청하려 했다. 그때 갑자기 도깨비들이 몰려와 방망이를 두드리면서 “밥 나와라” 하면 밥, “떡 나와라” 하면 떡이 수북이 쌓였다. 그 모습에 배가 고팠던 소년이 개암을 깨물자 “딱!”하고 제법 큰 소리가 났다. 혼비백산한 도깨비들은 음식과 방망이를 그대로 놔둔 채 모두 달아나 버렸다. 소년은 도깨비방망이를 들고 내려와 마을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됐다.

소문이 퍼지자 이웃의 한 욕심쟁이 영감이 소년과 똑같이 개암을 따서 주머니에 넣고 도깨비들이 몰려드는 기와집에 미리 숨어들어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들은 그대로 도깨비들이 몰려와 웅성거렸다. 이때라고 생각한 영감은 일부러 큰 소리가 나도록 개암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그러나 방망이를 얻기는커녕 도깨비들은 영감을 붙잡아 방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방망이 도둑으로 몰아 두들겨 팼다’는 설이다.

개암나무의 열매에는 지방과 단백질이 많아 영양적 가치가 높으므로 외국에는 여러 가지 품종이 있고 열매가 시장에 나오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식용유 원료에서부터 마법의 지팡이 만드는 데까지 사용한 것으로 보아 친근한 나무였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개암 향을 넣은 헤이즐넛 커피로 우리 곁에 있고, 제과점에서는 고소한 맛을 더 높이기 위해 개암을 사용한다.

헤이즐넛을 개암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개암나무속의 열매를 뜻하는 말이라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요리에 사용되는 헤이즐넛은 한국에서 나는 개암과는 종이 전혀 다르다. 정확히는 서양 개암나무(Corylus avellana)의 열매로, 자작나무과에 속하며 유럽과 서아시아가 원산지이고, 아제르바이잔, 그리스, 키프로스, 스페인, 영국, 미국 등지에서도 자생하고 있다.

‘한 줌의 헤이즐넛이 평생의 건강을 지켜준다’는 튀르키예 속담이 말해주듯 최근 헤이즐넛은 염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섬유질과 노화방지 기능을 지닌 비타민 E가 풍부해 심장질환 및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복부비만, 죽상동맥 경화증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대사성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칼슘과 철분을 충분히 함유하고 있어 뼈의 형성 및 골다공증 예방을 돕는다고 한다. 최근 연구에서 헤이즐넛에 함유된 ‘베타시노스테롤’이 몸 안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암세포의 활동을 억제한다고 보고했으며, 포만감을 느끼게 하고 지방을 태우는 능력까지 향상시킬수 있어 비만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또한 흡수력이 좋아 얼굴과 피부에 영양 공급을 하는 데 좋아 화장품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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