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징집 군인 10% 이상 인상
용병 처우 못지않은 월급 제시
푸틴 ‘용병 달래기’ ‘흡수’ 기류
한명 아쉬운 우크라·나토 촉각

9일 천지일보가 입수한 러시아 정부 공문. 이에 따르면 국방부는 올해 4분기부터 계약·징집 군인, 국가방위군, 경찰, 법 집행 기관 공무원의 급여를 10.5% 인상한다고 밝혔다. ⓒ천지일보 2023.07.09.
9일 천지일보가 입수한 러시아 정부 공문. 이에 따르면 국방부는 올해 4분기부터 계약·징집 군인, 국가방위군, 경찰, 법 집행 기관 공무원의 급여를 10.5% 인상한다고 밝혔다. ⓒ천지일보 2023.07.09.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최근 러시아가 군인 봉급을 대폭 인상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최근 희대의 반란 사태로 와해냐 흡수냐 기로에 서 있는 바그너 그룹을 두고 러시아가 ‘용병 달래기’에 이어 ‘흡수하기’에 본격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9일 천지일보가 입수한 러시아 정부 공문에 따르면 국방부는 올해 4분기부터 계약·징집 군인, 국가방위군, 경찰, 법 집행 기관 공무원의 급여를 10.5% 인상한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내무부, 소방국·소방청, 관세청 특수 계급으로 복무하는 공무원들도 포함됐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러시아군 병사 월급 수준은 바그너 그룹 등 용병 월급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수준이다. 실제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4월 모집 홍보 동영상을 통해 최소 20만 4000루블(약 310만원)의 월급을 내걸은 바 있다.

성과 보너스를 제외하면 지난달 바그너 그룹이 제시한 24만 루블(약 360만원) 이상의 월급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액수다. 이번에 인상 폭을 적용하면 그 차이는 더욱 좁혀지게 된다.

그간 러시아 국방부는 슈퍼마켓 경비원이나 피트니스 강사, 그리고 택시 운전기사로 일했던 남성들이 민간 생활에 환멸을 느끼다가 입대 후 성취감을 찾았다는 사례까지 자세히 들며 군 입대를 대대적으로 홍보해왔다.

실제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안전보장회의(SCRF)에서 의용군 5만명을 포함해 11만 4000명을 모집했다고 밝혔다. 또 이달 말까지 예비 병력을 구성할 충분한 신병을 충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 대통령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도 지난주 국방부가 올해에만 18만 5000명 규모의 신규 병력을 모집했으며 프리고진 대표의 바그너 반란 사태 이후 지난주에만 약 1만명이 러시아군에 입대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푸틴 대통령도 바그너 그룹을 활용하려는 뜻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하거나 벨라루스행을 택할 수 있다는 선택권을 준다고 약속하면서다.

그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통해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하거나 벨라루스행을 선택할 수 있다”며 “약속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병력이 와해되는 것을 막고자 ‘용병 달래기’에 나선 셈이다.

◆절대권력에 칼 든 프리고진 어떻게 되나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전에서만 최대 5만명이라는 대규모 용병들을 투입한 용병 기업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일부 성과를 내면서 권력 실세로 떠올랐다.

핵무기 배치를 속속 완료한 벨라루스에 바그너 용병들이 새롭게 기지를 만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내달에 열릴 나토 정상회담에서 벨라루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회원국을 보호하기 위한 추가 조치가 논의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진은 반란 중단하고 돌아가는 바그너 그룹 용병들 (출처: 로이터 통신, 연합뉴스)
핵무기 배치를 속속 완료한 벨라루스에 바그너 용병들이 새롭게 기지를 만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내달에 열릴 나토 정상회담에서 벨라루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회원국을 보호하기 위한 추가 조치가 논의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진은 반란 중단하고 돌아가는 바그너 그룹 용병들 (출처: 로이터 통신, 연합뉴스)

그러다가 약 2주 전 프리고진 대표는 돌연 수만명 규모의 용병들을 내세워 그동안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를 향해 총구를 돌리며 초유의 반란 사태를 일으켰다. 당시 무서운 속도로 북진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조차 뚫지 못했던 러시아 ‘심장’ 모스크바까지 단 하루 만에 뚫릴 뻔했지만, 양측이 한발씩 물러서는 극적 타협이 이뤄지면서 결국 ‘하루 천하’로 일단락됐다.

이후 반란을 일으킨 프리고진 대표는 오히려 러시아가 전술핵까지 배치시킨 혈맹국 벨라루스로 전방 이동했다. 반역자를 용서하지 않는 푸틴 대통령의 성향상 프리고진 대표를 암살할 가능성까지 제기됐지만, 현재 러시아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증언 등 프리고진의 운명을 놓고 상반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러시아 당국 관계자들이 지난 1일 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바그너 그룹 건물에 붙어 있던 용병 로고를 일일이 제거하고 있는 영상이 공개됐다. 러시아 국영방송은 프리고진 대표의 자택과 사무실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증거물품이라며 금괴와 돈뭉치, 신분 위장용 가발, 여권 등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가발과 개인 앨범 속 프리고진의 변장 셀카 사진들도 다수 포함돼 이목을 끌었다. 이번 압수수색으로 러시아 당국이 푸틴 대통령의 절대권력에 반기를 든 프리고진 대표와 바그너 그룹에 대한 응징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었다.

SNS에 공개된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62) 대표의 다양한 변장 모습. (트위터)
최근 SNS에 공개된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62) 대표의 다양한 변장 모습. (트위터)

그러나 최근 이러한 움직임과는 다른 증언과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프리고진 대표가 벨라루스가 아닌 러시아에 있다고 밝히면서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프리고진 대표는 지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다”면서 “오늘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모스크바나 다른 곳으로 떠났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간의 응징설과 달리 프리고진 대표에 대해 “그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태”라고 덧붙였다.

2주나 지났는데도 프리고진 대표가 별다른 제재 없이 벨라루스와 러시아를 오가는 등 여전히 건재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제기된다. 러시아와 재정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얽히고설켜 있기에 쉽사리 숙청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 외에도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에도 일부 참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외에도 지난 2015년 시리아에서 알 아사드 정권을 도와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를 격퇴했고,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모잠비크·시리아·리비아 내전에도 참여하는 등 영향력을 지속 넓혀왔다.

리비아를 포함해 말리·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일대에선 다이아몬드·금 광산 사업까지 손을 뻗고 있다. 석유·가스·광산 산업 계약 등 이권을 노리며 이제 막 성장 가도를 밟고 있는 여러 개발국에서 체제와 정권 유지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바흐무트=AP/뉴시스] 프리고진 홍보부가 5일(현지시간) 공개한 사진에 러시아 민간 용병단체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곳에 부대원들과 모여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프리고진은 바흐무트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흐무트=AP/뉴시스] 프리고진 홍보부가 5일(현지시간) 공개한 사진에 러시아 민간 용병단체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곳에 부대원들과 모여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프리고진은 바흐무트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푸틴 대통령은 바그너 그룹이 세계 곳곳에 구축한 용병 사업 네트워크를 흡수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는 보도도 뒤따랐다.

◆러군 등에 흡수냐 와해냐 기로

이번 사태로 최대 5만명 규모의 용병들이 러시아군에 흡수될지 아니면 러의 최우방국 벨라루스로 가게 될지, 그게 아니면 이대로 와해할지 관심이 쏠린다. 현재로선 이들의 수장이 벨라루스에 간 만큼 용병들을 불러들여 벨라루스에 머물게 할 가능성과 함께 러시아 군에 점차 흡수될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머물렀던 바그너 그룹이 벨라루스로 전방 배치될 경우 우크라이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엔 또 다른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벨라루스가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러시아가 나토 코앞인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시켰는데, 이에 더해 호전적 성향의 용병들까지 들어서면 군사·안보적 긴장 상황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종잡을 수 없는 이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일부가 우크라이나로 갈 수 있다는 돌변 변수까지 거론된다. 

러시아와 그야말로 피나는 전쟁을 벌이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용병들이 러시아나 벨라루스에 흡수되지 않고 이대로 와해되길 바라겠지만, 이윤을 바라고 모인 민간군사(PMC) 특성상 이 또한 여의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현재로선 용병들이 러시아군이나 벨라루스군에 흡수가 되거나, 처우가 충족되지 못하면 이대로 PMC 사업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 주민이 24일(현지시간) 철수 준비 중인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 병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 주민이 24일(현지시간) 철수 준비 중인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 병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반란 후 철수하면서 사진 찍는 프리고진. (AP/연합뉴스)
반란 후 철수하면서 사진 찍는 프리고진. (AP/연합뉴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