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5일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영아’ 사건을 전국에서 수백건 접수해 수사 중이다. 지난달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유령 영아 2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가 진행되면서 국수본의 접수·수사 사건은 매일 늘어나는 양상이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여론이 집중되자 지난달 30일에는 의료기관 아이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게 하는 ‘출생통보제’가 포함된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출생통보제가 담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임신부가 의료기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출산할 경우 이 아이는 어떻게 되냐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출산 시 익명성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야당 반대로 이는 상임위 법안소위도 통과하지 못했다. 보호출산제가 양육 포기를 조장하고 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게 반대 측 입장의 요지다.

친부모의 양육과 아동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의료기관에서 출산하지 않는다는 자체가 아기의 생명을 깊이 있게 생각할 경황이 없음을 뜻하니, 적어도 이들의 생명을 구할 방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 등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익명출산제도 참고해봐야 한다. 독일 정부는 2014년부터 익명출산을 법적으로 보장해 24시간 무료 핫라인에 익명으로 전화해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상담사에게 신분증을 제시하는 등 특정 절차를 거쳐 아이가 16세가 되면 출신증명서를 열람할 수 있게 해 아동의 알 권리도 충족한다. 스위스에서는 익명출산을 했더라도 산모에게 6주 동안 아이를 입양시킬지 여부를 결정하게끔 한다. 양육의 기회를 재고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미혼 부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사라지고 임신, 출산, 양육 지원 체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익명출산제가 크게 필요 없겠지만 이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임신부가 처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은 다양하다.

일차적으로는 부모가 책임 져야 하겠으나 각 상황에서 신생아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긴급 제도는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출생통보제 처리가 방치된 사이 수많은 아이가 죽거나 실종됐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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