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어떤 국가도 쫓아올 수 없는 기록을 갖고 있다. 과거에는 교통사고율이 국민을 어지럽게 했고, 지금은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1위이고 세계적으로는 10위에 올라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부동의 1위는 출산율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2년 작년 우리나라는 24만 9000명의 출산으로 합계출산율 0.78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출산율은 다른 국가가 근접하기 어려운 수치로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인 1.59명의 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초저출산율은 저출산으로 고민하는 일본을 훨씬 넘어서 거의 통제를 받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국가의 출산장려정책도 단편적이어서 기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결혼적령기에 들어온 세대의 혼인율도 떨어지고 1인 가족의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간다.

합계출산율이 세계 최저가 됐는데도 정치권은 자기 이익만 챙기기 급급하고, 누구도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영아 살해 사건이 발생하면서 출생신고제도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현행 제도는 자녀가 출생하면 부모가 직접 주민센터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소위 선진국들은 출산하면 병원에서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전자정부화 지수에서 1위를 달성하고 통신망 보급이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들어도 출생신고제도 하나 온라인 시대에 맞게 하지 못하는데 전자정부가 된들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몇 년 동안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사례가 2천건이 넘는다고 하니 현행 출생신고제도는 문제가 있어도 한참 문제가 있는 제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탁상행정의 전형은 이런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해마다 수십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저출산율은 해가 갈수록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 정도 되면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때가 됐다.

그런데 예산만 투입하면 개선될지도 모른다는 한심한 인식과 대책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저출산을 미끼로 이익만 챙기려는 집단의 이용물로 변했는지도 모른다.

저출산 문제와 영아살해 간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영아살해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국가의 최고규범인 헌법은 생명권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나, 천부적인 권리로 생명권을 보장하고 있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윤리적 인격에 기초하기 때문이고 생명존중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대상이다. 하물며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자녀의 생명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연쇄살인범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다. 범죄인의 생명도 존중하는데, 영아살해범이 늘어난다는 것은 가치관 붕괴의 비극적인 현실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인성교육의 부재가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지만, 오로지 금전과 이익만 추구하는 세태가 빚은 비극적인 결과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택값 올라가는 것에 관심을 갖고 혹여나 가격이 내려갈까 봐 노심초사하는 사회를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그저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자신이 터를 잡고 있는 국가의 존재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 앞에서 아무 생각이 없다면, 그것이 더 무서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자신을 부정하는 환경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영아를 버리고 살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 원인은 복합적이기 때문에 전 국가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혼인하고 출산해 자녀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인해 살 수 있는 주거복지정책부터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주택가격이 출산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교육비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지, 이런 문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되고 대책도 수립됐다. 그런데 누구도 실천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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