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요즈음 노년 세대가 많이 젊어졌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라는 가요가 히트를 치기도 했지만 60~70대에 시니어 모델로 인기를 구가하는 멋진 이들도 있다. 80이 넘어 못 배운 한을 이룬다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할머니들도 있다.

‘시니어 미라클’이라는 용어가 요즈음처럼 실감나는 때도 없을 것 같다. 가천대 이길녀 총장은 90대 나이인데도 40대 건강한 모습으로 뛰고 있다. 100세가 넘은 김형석 교수는 지금도 신문에 명칼럼을 쓰고 있다. 강원도 양구군에 소장해 오던 도자기 등 유물과 철학서적을 기증해 후학들에게 모범이 되신 교수님이다.

고구려 산성을 조사하면서 몇 년 전에 439m 양주 도락산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는 날씬 몸매의 80대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다. 얼굴과 자세를 보니 아직도 청년이다.

동네 사람들과 등산객들은 그를 산신령이라고 부른다. 도락산을 하루도 빠짐없이 오른 까닭에 이름 모를 새들도 휘파람을 불면 날아와 손등에 앉는다. 지금도 매일 도락산을 등산하시는지 궁금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명작 소설 ‘노인과 바다’는 한계 상황과 처절하게 싸우는 늙은 어부의 집념을 그린 것이다. 노인은 파도와 싸우며 큰 청새치 고기를 낚아 배에 매달고 귀항했지만 상어 떼들이 달려들어 밤새 다 뜯어먹은 것을 발견한다.

작가는 노인을 인간 군상의 축도로 그린 것이다. 생존경쟁이란 치열한 삶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뼈만 앙상한 고기만 남는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노인의 입을 통해 한마디 한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다.’

‘어모털리티(amortality)’라는 단어가 있다. 수년 전 타임지가 커버스토리로 다룬 ‘지금 당장 세상을 바꿀 10가지 아이디어’의 하나로 꼽은 ‘나이를 잊고 사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단어’로 선정한 용어다.

이 단어를 만든 타임지의 편집장 캐서린은 ‘노년에도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어모털족(amortals)은 바로 ‘인생의 만년을 젊게 사는 사람들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람들이 늘고 있는 이유는 유전적 요소가 아니라 급격한 사회적 변화 때문이다. 즉 의학의 놀라운 발전으로 나이를 잊게 해주는 다양한 기술이 일반화됐다. 앞으로 의학기술은 인간을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킬지 모른다. 머리에 칩 하나만을 심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지금 이 같은 놀라운 기술도 실험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한국에도 거리에 나서면 나이를 잊고 사는 멋쟁이 어모털족 노년들이 넘쳐난다. 노랗게 머리 염색을 하는 할머니들, 펑크 머리에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10대 차림의 젊은 할아버지들도 많이 본다.

요즈음 실버세대의 즐거운 생활을 이끄는 ‘노(老)치원’이 유행하고 있다. 인천시 서구에 있는 K요양원은 원래 유치원이었다. 그러나 저출산으로 원생이 줄자 지난해 1월부터 요양원으로 리모델링해 새롭게 문을 열고 노치원이라고 명명했다는 것이다.

사실 ‘노치원’이란 용어는 좋지 않다. ‘노치(老稚)’란 말은 ‘아이 같은 노인’ 혹은 노인들을 폄하하는 용어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전국에 요양원 시장이 커지는 5년 동안 유치원 수는 459곳이나 줄었다고 한다. 인구절벽시대 유치원이 줄어든다는 것은 안타깝다.

경륜이 풍부한 노년세대들의 모임을 공익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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