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동아예술전문학교 예술학부 교수)

이순재가 참여한 연극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는 리어왕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셰익스피어 원전의 의도를 200분간 그대로 구현해 작품의 배경인 기원전 8세기를 무대 위에 올렸다.

작품에서 비극은 가치 있거나 진지하고 완결된 행동의 모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목표를 공포와 연민이라고 정의했다. 공포와 연민은 전적으로 비극을 관람하는 관객의 반응이다.

연극 리어왕을 보면, 권력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더 높은 권력을 끊임없이 탐하는 인간, 빛바랜 권력 앞에서도 변함없는 충직을 보이는 인간, 권력을 대하는 인간의 군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더 강한 에너지도 내뿜는다.

관객의 열렬한 반응을 유도해 내는 모든 것은 연극적이라고 한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슬픈 종말도, 무대 위 울려 퍼지는 목소리도 연극적이다. 연극적인 매력은 관객을 극장에 머물게 한다. 리어왕에서 볼 수 있는 가슴 깊은 울림, 강한 의미, 오싹한 서스펜스도 연극적이다. 고대 연극이든, 현대 연극이든 연극작품에서는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한 곳인가, 시간과 연대는 어떻게 되는가를 질문하게 한다.

이순재가 연기한 연극 리어왕의 멋진 전개는 관객으로 하여금 행동의 시작을 알아차릴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드러낸다. 또한 극 속에서 자신에 대항하는 나, 다른 사람에 대항하는 나, 사회에 대항하는 나, 우주와 자연의 힘에 대항하는 인물들을 곳곳에 배치해 극 속의 균형을 무리 없이 맞추기도 했다.

88세 나이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건강함을 무대 위에 내세운 이순재는 리어왕 도전기를 통해 진짜 배우가 무엇인지 관객들의 뇌리에 그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대발이 아빠’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리어왕’까지 이순재의 변신은 아름답기만 하다. 치매와 병 등 건강 문제로 힘든 삶을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이순재는 그저 쉬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논스톱으로 달려가는 건강한 인생의 롤모델이다.

연극 리어왕은 현대적인 감각의 무대 장치와 리어왕 처음으로 재현해 낸 기원전 8세기의 의상 등 다양한 요소로 완성도를 더했다. 더불어 역동적인 전투 장면과 주요 배역을 포함한 광대의 열연 등이 또 다른 관람 포인트로 공연 3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진다.

이순재는 극 속에서 명확한 언어구사를 통해 어려운 작품이지만 관객과 호흡을 같이 했다. 각 씬을 면밀히 분석해 어려운 단어, 비유가 많은 작품 리어왕에서 진솔하게 감정을 전달하고, 관객이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무대를 선사했다.

리어왕을 포함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엘리자베스 여왕에서 제임스 1세로 왕권이 넘어가던 시기에 완성된, 시대의 불안이 반영된 이야기다. 인간의 군상과 욕망, 갈등, 본능이 담겨 있고, 이는 여전히 불안한 현재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연극은 현재 외면받고 있다. 배우들이 살아 숨 쉬고 세상 속 현대 인간들의 분노, 갈등, 희망을 언어와 정서를 통해 전달하는 연극은 OTT 등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과의 경쟁에 밀려 심지어 배우 지망생조차 가까이하지 않고 있다. 리얼리티를 되새김질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돌직구를 날리는 생생한 연극에 관객들은 주목하고 재미와 열정을 느껴야 한다. 좋은 한 편의 연극을 통해 관객들은 과거와 현재의 경험에 빠져들며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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