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정권 대선 공약 욕심
‘세계 최초 상용화’ 타이틀 화근
불가능 알면서도 이통사와 합작
이통사들만 수년간 배부른 결과
윤석열 정부, 사태 뒷수습 ‘총력’

유영민 전(前)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19년 3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회 뉴민주주의연구소 포럼 ‘5G가 열어가는 세상’ 특강에 참석해 강연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DB
유영민 전(前)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19년 3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회 뉴민주주의연구소 포럼 ‘5G가 열어가는 세상’ 특강에 참석해 강연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손지하 기자] 상용화 4년 차에도 가시질 않는 5G 품질 및 사기 논란은 ‘세계 최초 상용화’ 타이틀과 문재인 전(前) 정부가 대선 공약을 지키려고 시작된 성급한 상용화로 비롯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숙한 5G’ 부추긴 정부… 이통사, 시기상조 느꼈다

상용화 당시 이동통신 3사는 ‘LTE의 20배 빠르다’는 문구로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이는 통신사가 5G 28㎓ 기지국을 전국망으로 촘촘하게 깔고 그 어떤 방해가 없을 때 구현 가능한 이론상의 속도였다. 28㎓라는 주파수는 전파 특성상 도달거리가 짧고 방해를 잘 받기 때문에 LTE 등 저주파수보다 더 많은 수를 깔아야 한다.

유영민 전 장관 시절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5G 상용화를 준비하면서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댄 회의록을 살펴보면 이미 과기정통부는 이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당시 깔려 있는 LTE 기지국의 4.3배를 설치해야 제대로 된 5G를 전국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100만개가량 구축돼 있던 LTE 기지국 수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을 이통사에 요구했다. 각 사가 받은 의무 구축 수량은 1만 5000개로 3사 총합 4만 5000개였다. 전부 구축돼도 전국 서비스는 불가능하다. 이후 품질 논란이 심해지자 국정감사에서도 질타를 받은 과기정통부는 “5G 28㎓는 전국망에 적합하지 않다”고 사실상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

1만 5000개를 구축하는 비용도 아까웠던 이통 3사는 공동 구축을 제외한 순수 수량으로 전체의 4% 수준만 달성하고 주파수를 회수당했다. 28㎓와 관련된 단말기, 콘텐츠 등 모든 산업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았고 이통사가 큰 투자를 감수할 만큼 수익성을 확인하지 못한 탓이다.

이통사들은 5G 상용화 자체에도 시큰둥했다. 정부 주도로 상용화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따르긴 했지만 이때는 LTE 시장이 아직 포화 상태에 이르기 전이었다. 이통사는 더 이상 기존 시장에서 수익을 볼 만한 게 없을 때 다음 세대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유영민 전(前)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18년 11월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일대에서 이동통신 3사 관계자들과 함께 5세대 이동통신(5G) 망구축 현황을 직접 살펴보고 현장 의견을 청취했다. 사진은 유 장관과 이통 3사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천지일보DB
유영민 전(前)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18년 11월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일대에서 이동통신 3사 관계자들과 함께 5세대 이동통신(5G) 망구축 현황을 직접 살펴보고 현장 의견을 청취했다. 사진은 유 장관과 이통 3사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천지일보DB

◆엉터리 정책 희생양 국민… ‘5G 강매’ 통신사만 웃었다

문제가 있는 건 28㎓만이 아니었다. 28㎓는 우리나라에서 인식할 수 있는 단말기조차 없었다. 그러면서 상용화 초기에 출시된 신규 스마트폰을 5G 전용으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5G 강제 가입을 유도했다. 20배 빠른 5G를 인식할 수 없는 단말기와 상용화되지도 않은 서비스를 거짓 홍보했다.

이용자들이 5G 서비스로 현재 쓰고 있는 주파수는 3.5㎓ 대역이다. 이는 세간에서 논란이 된 ‘불통’ ‘불량’ 5G를 말한다. 28㎓ 기지국보다는 더 많은 투자를 받았고 투자가 이어지고 있지만 4년 차인 현재에도 수월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통사들은 5G 상용화 후 고가 요금제로 연평균 14% 달하는 영업이익을 달성하면서도 5G 투자에는 과감하지 않았다. <관련 기사: ‘유명무실’ 5G, 가입자 늘었지만 이용자 반응 ‘싸늘’>

이 같은 소비자 피해에 대해 신경을 쓰는 건 과기정통부가 아닌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였다. 공정위는 지난달 24일 5G 거짓·과장 홍보로 이통 3사에 약 336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달여 후에 실제 과징금 액수가 결정돼 통보될 예정이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이통 3사가 5G 속도를 과장 광고해 부당 이득을 챙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한다”며 “통신사들을 상대로 소송 중인 소비자에게 관련 증거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자할 때도 설비투자를 늘리지 않던 이통사들은 경쟁이 격화되자 지갑을 열었다. 이들은 이통사 간 통신 품질을 둘러싼 주파수 쟁탈전이 시작된 최근에야 5G 투자액을 올리고 있다. 할당받은 당시 받은 주파수가 사별로 달랐는데 LG유플러스가 최근 주파수를 추가로 할당받으면서 3사가 동일한 대역을 갖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삼성전자의 통신장비보다 화웨이 장비가 좋기 때문에 화웨이 장비를 쓰는 LG유플러스의 주파수가 모두와 같아지면서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5G 속도를 가장 빠르게 구현할 수 있게 됐다”며 “이에 SK텔레콤과 KT도 추가 주파수를 요구하는 등 경쟁이 활성화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화웨이의 5G 경쟁. (출처: 연합뉴스)
삼성전자와 화웨이의 5G 경쟁. (출처: 연합뉴스)

◆이달 발표될 통신 경쟁 촉진 정책 주목

과기정통부는 윤석열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기조를 바탕으로 이통사에 5G 중간요금제 출시를 독려하기도 했다. 소비자 선택권은 늘었지만 실질적으로 가계통신비 절감 효과를 가져오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진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전 정권의 잘못된 통신 정책을 과기정통부와 공정위가 수습하는 데 몰두한 상황”이라며 “5G 중간요금제가 나온다고 해도 효과가 미미할 것이다. 통신사들이 망도 제대로 많이 안 깔았기 때문에 5G의 단가가 낮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로 정부가 이통사들의 요금 출시에 개입하기도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통신요금 인가제는 시장 점유율 1위인 통신사의 과도한 요금 인상을 막기 위해 1위 통신사가 신규 요금제 계획안을 제출하면 정부가 이를 검토한 후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폐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2020년 5월 통과됐다. SK텔레콤이 요금 인하로 경제를 활성화해서 소비자 편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바탕으로 물밑 작업을 한 결과다. 하지만 이후 눈에 띄는 요금 인하는 이뤄지지 않았고 3사가 5G 고가 요금제로만 담합해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이 가운데 과기정통부는 이달 중으로 통신 시장 경쟁 촉진 방안을 발표한다. 초고는 이미 대통령실에 보고됐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알뜰폰 활성화 정책 및 제4이동통신사 진입 관련 내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HJ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통신시장 경쟁촉진 정책방안 TF 착수회의’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천지일보 2023.02.20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HJ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통신시장 경쟁촉진 정책방안 TF 착수회의’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천지일보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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