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동의보감에 보면 ‘후어(鱟魚)’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治痔․殺虫(치질살충), 及腸風·瀉血(급장풍·사혈), 産後痢(산후리), 生南海(생남해), 大者如扇(대자여선), 長六·七尺(장육·칠척), 似蟹皆牡·牝相隨(사해계모·빈상수), 無目得牝始行(무목득빈시행), 牝去牡死(빈거모사), 生南海(생남해) 후어는 성질이 평순하고, 독이 없다(性平․無毒). 치질을 치료하고, 벌레를 죽이며, 장풍으로 피를 쏟는 것과 산후의 이질을 다스린다. 남해에서 살고 큰 것은 부채같이 생겼으며, 길이가 6~7자나 되고 게 비슷하게 생겼다. 수컷과 암컷이 맞붙어 다니는데, 수컷은 눈이 없기 때문에 암컷을 만나야 비로소 다닐 수 있다. 암컷이 달아나면 수컷은 죽는다. 남해에 산다’라고 나온다.

후어의 숫컷은 눈이 없어 암컷이 있어야 사는 어쩌면 불운한 게(蟹)다.

한말 개화사상가였던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이 쓴 ‘운양집(雲養集)’ 제1권 승평관집(昇平館集)의 금오도즉사(金鰲島卽事)라는 시에서 “波送鱟帆橫(파송후범횡) 파도는 옆걸음 하는 후범을 보내주고”라고 했다. 이 시에서 후범(鱟帆)은 게의 등딱지가 들썩거리는 것을 뜻한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아들 이광규(李光葵)가 편집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51권 이목구심서 4(耳目口心書四)에 후어가 나오는데, ‘후어는 게의 일종이다. 눈은 등 위에 있고 입은 배 아래에 있으며 등 위에는 7~8척(尺) 되는 뼈가 있는데 바람이 없으면 이 뼈를 눕히고 바람이 불면 이 뼈를 돛처럼 펴서 바람을 타고 다닌다. 그러므로 등에 돛대를 달았다고 한 것이다’라고 나온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한문단편소설 ‘우상전(虞裳傳)’에서도 “寰海地中海(환해지중해) 온 섬이 지중해를 이루어, 中涵萬象活(중함만상활) 오만 가지 산 것들이 구물거려라, 鱟背帆幔張(후배범만장) 돛을 펼친 후어(鱟魚)의 등이며, 鰌尾旌旗綴(추미정기철) 깃발을 달아맨 해추(海鰌)의 꼬리며”라며, 후어의 등껍질을 돛으로 하고 해추의 꼬리를 깃발 삼았다고 썼다.

여기에서 중국 당나라 때 유순(劉恂)이 지은 ‘영표록이(嶺表錄異)’를 보면 해추는 ‘긴흰수염고래’를 일컫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후어는 등에 딱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게(蟹) 종류임이 틀림없지만 어떤 게인지가 궁금하다.

한자로는 ‘鱟’자가 참게 또는 투구게로 나와 있다. 그래서 일부 고전학자들은 후어를 참게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참게는 강, 하천, 호수 등에 사는 민물게다. 운양 김윤식이나 연암 박지원의 후어는 모두 바닷게를 이야기 한 것이다. 참게로 해석한 것은 게의 생태를 모르고 번역한 것 같다.

그렇다면 후어는 참게가 아닌 투구게다.

투구게는 현재 지구상에 생존하는 종이 3속 5종으로 알려져 있다. 투구게는 퇴구강 검미목(劍尾目) 투구게과에 속하며, 아시아에 서식하는 투구게, 남방투구게, 맹그로브투구게가 있고, 북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아메리카투구게가 있다.

투구게는 약 2억년 전의 모습과 거의 같은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린다. 안타깝게도 중국과 일본 남부 연안에 분포하나 환경오염으로 개체 수가 점차 줄고 있으며 아메리카투구게도 그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

투구게는 난생(卵生)으로 번식기가 되면 산란을 위해서 해안에 상륙한다. 암컷이 모래구멍에 산란을 하면 수컷은 암컷의 등 위에 올라가 정자를 뿌려 알을 수정시킨다. 종종 암컷 한 마리 주위에 여러 마리의 수컷이 달라붙기도 한다. 번식을 마친 투구게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지만 번식을 하면서 힘을 소진한 몇몇 개체들은 바다로 돌아가지 못해 사망하게 된다.

투구게는 몸길이 약 60㎝까지 큰다. 몸은 머리가슴·배·꼬리의 3부분으로 돼 있다. 촉각이 없고 협각(鋏角)이 있는 점과 혈액의 성분상 거미류에 가깝다.

대한민국에서는 1997년 10월 제주도의 우도에서 세가시투구게가 채집된 적이 있다. 현재 이 세가시투구게의 표본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일본에서는 오카야마 현(岡山県) 카사오카사 인근에서 자주 볼 수 있어서 유명하다고 한다.

조선 후기 투구게가 우리나라 연안에서도 잡혔는지는 몰라도 조선후기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아언각비(雅言覺非)에 후자장(鱟子醬)이 나온다. 후자장은 난장(卵醬)으로 후어 즉 투구게의 알로 담은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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