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정과(正果)는 과일이나 연근, 생강, 도라지, 감초 같은 약초를 조청이나 꿀에 졸인 한과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는 “정과는 이름 난 나무열매와 아름다운 풀 열매를 꿀에 달여서 볶은 것으로, 가히 오래 두어도 되나니 중국에서는 밀전과(蜜煎果)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정과라 한다. 즙청까지 아울러 쓰는 것은 수정과라고 한다”라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궁에서 잔치 때 주로 연근·생강·산사육·동아·모과·도라지 등을 이용해 정과를 만들었고, 제례 시에는 특히 인삼정과를 올렸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계목식(啓目式)의 ‘啓目’에 ‘粘連牒呈是白有亦, 向前物膳所封各果中, 生栗·石榴·柚子·紅柿子·木果正果, 今非當節, 依前例, 生栗代林檎, 石榴·柚子代大棗, 紅柿子代栢子, 木果正果代生薑正果封進亦爲白有臥乎所, 在前如此之時, 已有代封之例, 今亦依所報, 封進事分付’은 ‘云云’에 해당하는 아뢸 내용이다.

‘첩정을 보내온 관아에서 선물(膳物)로 올리는 각 과일 중에 생밤, 석류, 유자, 홍시, 모과정과는 지금이 제철이 아니므로, 전례대로 생밤은 사과로, 석류와 유자는 대추로, 홍시는 잣으로, 모과정과는 생강정과로 대신 봉진(封進)하고자 하고 있으므로, 보고대로 봉진(封進)하라고 분부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

1630년(인조6) 6월에 대군(大君)이 윤선도(尹善道)의 생일을 맞아 각종 음식물을 하사하며 동봉한 은사문(恩賜文)을 모은 ‘은사첩(恩賜帖)’ 제2책 1630년 봉림대군방(鳳林大君房) 은사물목(恩賜物目)에 양색건정과(兩色乾正果) 1기(器)가 나오는데, 양색건정과는 두 가지 색깔로 꾸민 말린 정과를 말한다.

1734년 영조10년 황재(1689~1756)가 진주사 서장관과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 쓴 ‘갑인연행록’에 보면 황재가 평안북도 정주 고을에 들렀을 때 ‘자내(自內) 즉 궁궐에서 들쭉정과(㐙粥正果)를 보내왔다’고 나오는데, 들쭉을 꿀이나 설탕 등에 재거나 조려서 만드는 정과를 말한다.

북한에서는 백두산 인근에 들쭉나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열매로 술을 담거나 정과를 만든다.

1800년대 말엽의 기록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인삼정과(人蔘正果)는 도라지정과처럼 하는데, 도라지정과는 좋은 도라지를 삶아 많이 우린 다음 저며서 한 번 삶아 버리고, 꿀을 넣어 조려서 물기 없이 끈끈해지면 쓴다”라고 했다. 즉 쓴맛이 있는 인삼을 끓는 물에 살짝 삶아 1차로 익힌 후 꿀물이나 설탕물을 부어 다시 약한 불에서 서서히 조린다. 물기가 거의 없어지고 윤기가 돌면 망체에 하나씩 꺼내 식히는데 정과 표면에 설탕을 묻히기도 한다. 작은 인삼은 잔뿌리만 없애고 통으로 조리기도 하고, 큰 인삼은 편으로 썰어서 조리기도 한다.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에는 인삼정과를 만들려면 인삼을 삶아서 오랫동안 물에 담가 우려내고, 1푼 두께, 3푼 넓이, 1치 길이로 썰어서 설탕을 넣고 물을 치고 조린다고 했다. 인삼을 절인 인삼정과는 가장 귀한 한과였다.

좌참찬 김재로(金在魯)가 선의왕후(宣懿王后)의 국상(國喪) 중인 3년 동안 제수 가운데 인삼정과의 소비가 매우 많으니 폐지하도록 아뢰자, 영조는 파하게 했다(‘영조실록’ 7년 12월 26일). 제사와 진연(進宴)에서 한과류를 일제히 감제하라는 하교를 내렸으며, 특히 인삼정과를 감하라는 것으로 보아 인삼정과는 비용이 많이 드는 고급 음식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음식책(飮食冊)’의 기록을 보면 봄철과 겨울철의 교자상에 생과일은 배·생률·준시(蹲柹)·감자(柑子)·석류(石榴)·유자(柚子)를 올리고, 정과로는 인삼·생강·전약(煎藥)·귤·청미·산사(山査)·행인(杏仁)을 올린다고 했다.

조선 말기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전주(全州) 봉상면(鳳翔面)에서 나는 생강은 초가을에 연한 것을 캐어 정과(正果)를 만드는데, 천하의 진미이다. 판서 김교근(金敎根)이 전라도 관찰사가 됐을 때 풍고(楓皐)가 이것을 요구하니, 김공이 힘써 달여서 보냈는데 풍고가 너무 늦었다고 책망했다. 김공이 뒤에 들으니 한 아전이 선수를 쳐 올려 보냈다고 하므로 매로 다스려 죽이고자 했는데, 양일(兩日) 간에 청탁하는 서찰이 갑자기 이르렀다. 그 내용에, “일찍 이 맛을 보게 된 것은 역시 감사(監司)의 공입니다” 했으니, 권력 있는 아전이 본관(本官)보다 나은 것이 본래 이와 같은 것이다’라고도 나온다.

여기서 풍고는 조선 후기 순조의 장인이며 노론 시파(時派)의 핵심이었던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을 말한다.

현재는 옛날과 반대로 설탕이 흔해지고 꿀이 비싸져서 꿀로 절인 것이 더 비싸다. 중국에 탕후루라는 비슷한 요리가 있다.

이 탕후루는 중국 송나라 때 황제인 광종의 첩이었던 황귀비가 몸이 허약해 어떠한 약제와 시술로도 병이 낫지 않았지만, 한 한의사가 소화를 돕는 산사나무 열매를 설탕과 달여서 식전에 먹게 했더니 병이 나았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가 백성들한테 퍼지자, 사람들은 산사나무 열매를 꼬치에 꿰어 팔기 시작했고 이것이 탕후루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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