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필자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북한의 국경도시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정규적인 탁아소와 유치원을 거쳐 북한의 고도성장기인 1960년대 전 기간에 초, 중학교를 다녔다. 북한에서는 이 세대들이 신분 상승 문제로 “왜 우리 할아버지는 일본 경찰서에 돌멩이라도 집어 던져 유리창이라도 깨지 않았는가?” 또 “왜 우리 아버지는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갔다는데 전사하지 않았는가?” 이런 말을 농담조로 던진다. 이른바 노동당 시대에 ‘백두산 줄기’와 ‘낙동강 줄기’가 출세하는 데 따른 동경 반, 시기 반의 농담이다. 필자의 부친도 군인으로 한국전쟁에 참가했으나 다행히 서울에서 ‘통일정부’ 준비에 참가하던 관계로 살아 돌아왔다고 한다.

그 당시 북한에는 20, 30대의 젊은 과부들이 너무 많았다. 한국전쟁으로 남편들이 전쟁에 나가 무리로 전사하다 보니 여인들 3명 중 1명은 과부였다. 처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던 그들은 곧 생기를 되찾고 활발하게 생활했다. 자녀들이 학교에 가면 전사자 가족이라고 자녀들 모두 교과서와 교복을 무료로 지급하고, 본인들도 노동당이 엄선해 군당학교와 공산대학에 보내 간부 후보로도 키워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웃음은 얼마 안 가 요염기로 변한 것처럼 보였다. 어느날 극장에 영화구경을 갔더니 젊은 과부들이 아기 하나씩을 업고 버젓이 영화구경을 온 것이 아닌가. 인내심을 잃고 외간 남자와 관계를 가져 아기를 낳은 것이다. 이런 일이 다반사라 노동당도 그들을 처벌할 길이 없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과거 임진왜란 직후 조선에는 젊은 과부가 너무 많았다. 조선 조정은 이들의 도덕성을 유지하고 사회 안정을 이루고자 이른바 ‘열녀문’이란 것을 세워주며 독신녀 생활을 장려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 그 중 성리학을 중요시한바, 성리학에서는 강조하는 것이 단 세 개였는데, 그것이 충, 효, 열(烈)이었다. 그 중 열을 지킨 여인을 열녀라고 하며, 돈 많은 집안은 열녀를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며 마을에 열녀문을 만들어 열녀를 기렸다.

대다수는 성리학적 예법을 직접적으로 학습하고 따랐던 사대부 여성을 기준으로 자주 세워졌다. 일단 평민들은 열녀가 되기엔 관련 사상이 미약했을뿐더러, 서로 빈 부분을 채우며 살아가던 조선 사회에서 지조 하나 지키자고 생계적인 면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쉽게 열녀가 되지 않았다. 열녀문이 세워지면 세금이 면제되고 혜택이 늘어난다는 점을 악용해 멀쩡한 사람을 죽여 놓고 열녀로 둔갑시켜 비석을 세우는 일들까지 벌어졌다. 과부는 자살을 강요하거나 아예 직접 죽일 정도였다. 자살을 강요받는 것이 두려워 먼저 자해를 한 경우도 있었는데 주로 손가락을 잘랐다. 문제는 개인이 아닌 마을 단위로 일어났던 것. 현대로 치환하자면 보험 사기를 위해서 명예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이러한 행동이 들통 났을 경우 조정에서는 그 지역의 열녀비는 취소하고, 고을의 등급을 강등시키는 등의 처벌을 내렸다. 특히 조선시대의 고을 등급 강등은 거주민들의 처우 악화와 수령 파직을 동반했기 때문에 더더욱 강력한 처벌이었다.

오늘 이른바 사회주의 북한에서 새로운 ‘열녀문’이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전사한 조종사 아내들에게 평양시의 아파트를 선물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지난해 10월 공군 집단 훈련과정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며 전사한 조종사 가족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이라는 지시를 군 총정치국을 통해 하달했다. 구체적으로 지난 5월 6일 군 총정치국은 지난해 최고사령관(김정은) 명령에 따라 진행된 대규모 공군 훈련 과정에서 무려 20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최근 그 가족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이라는 노동당의 결정을 전달한 것이다. 평양의 중심 지역은 아니고 서성구역 아파트가 그 선물아파트로 책정됐다고 한다. 아울러 총정치국은 사망자의 아내들에게 군복을 입혀 체계적으로 키우고, 자식들은 혁명학원에 보내도록 할 것임도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무리한 명령에 따라 북한 공군은 무려 150대 이상의 공군기를 동시에 이륙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게 됐다. 고물 전투기가 젊은 과부들을 양산하는 비극을 초래했는데, 그들 젊은 과부들이 과연 아파트와 평양 거주로 이른바 ‘혁명적 신념’을 지켜갈지는 의문이다. 바야흐로 평양에서도 현대판 ‘보쌈’이 횡행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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