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요즘 북한의 심장부 평양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지난 2.16 김정일 생일에 이어 이번 4.15(111주기) 김일성 생일에도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딸 김주애는 연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톱 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무슨 일인가? 이제 김일성과 김정일, 즉 조상들은 가고 북한의 미래를 이끌어갈 자신과 김주애만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한마디로 김정은과 김주애는 앞에, 김일성과 김정일은 뒤에, 더 나아가 조상들의 굿바이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어떤 면에선 긍정적인 일이다. 과거에 붙잡혀 개혁과 개방의 길을 걷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북한인데 이제 과거와의 작별을 시작하려 한다면 이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1978년 개혁 개방을 선언하면서 제1성이 ‘사상해방’이었다. 사상의 굴레를 벗어버릴 때만이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로 갈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이 농경국가 중국에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상전벽해를 불러온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사상해방의 본질은 개인숭배를 배제하고 공산당의 유일적 지배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과거와의 단절도 그런 의도라고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김정은 역시 선대 수령들이 저질러 놓은 사회주의 오류에 대해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다고 본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종교를 거부하면서 김일성을 신처럼 모시는 거대한 ‘태양궁전’을 지어놓고 인민들을 참배시키는 모습에 반감을 느낀 것 같다. 그래서 저 자신부터 발길을 끊고자 이번 4.15에도 참배를 거부했을 것이다. 또 장기적으로 신성한 태양궁전 주변을 화성 신도시 건설로 갈아엎고 있는 것도 그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향후 2025년까지 화성지구를 비롯해 평양시 북동부에 5만 세대 살림집이 꽉 들어차면 태양궁전은 자연 주택가에 잠식하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북한은 화성지구 1만 세대 살림집 건설을 완료하고 입주식을 진행했다. 평양 북동쪽 룡성구역에 위치한 화성지구는 인근에 금수산태양궁전과 대성산이 있어 그간 개발되지 않다가 ‘북한판 뉴타운’으로 거듭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전날부터 이삿짐을 실은 차량들이 화성지구로 줄지어 들어섰다고 22일 보도했다. 통신은 화성지구를 “사회주의 번화가”로 칭하며 “새 집들이로 설레는 어느 집을 찾아가도 당에 대한 인민의 고마움과 보답의 일념이 격정의 바다가 돼 흐르는 사회주의 문명의 이상향”이라고 자랑했다.

보도에 따르면 수도관리소 직원, 학교 교사 등 노동자들과 6.25전쟁에 참가했던 전쟁 노병, 군인 가족, 제대 군인 등 군 관련 인원들이 화성지구 새집으로 입주하는 소감을 전했다. 화성지구 상징 건물인 40층짜리 건물에 입주한다는 한 노동자는 “창밖으로 안겨 오는 웅장한 새 거리의 장관에서 눈을 뗄 수 없다”고 소감을 말했다. 다른 입주자는 “우리 같은 평범한 노동자들이 이상으로 그려보던 현대적인 살림집을 무상으로 받아안고 보니 당의 은덕에 어떻게 보답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주택가에 묻힌 궁전은 더 이상 궁전이 아니다. 김정은은 그것을 노렸는지 모른다. 그때 가서 노동당은 인민대중을 우선한다면서 김일성·김정일 유해를 평안북도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국제친선전람관은 외국의 국가수반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준 진귀한 선물들을 전시한 곳이다. 결국 김일성 김정일의 유골은 외국 국가수반들의 선물보다 못한 존재로 격하되고 말 것이다. 반면 오늘 김정은의 딸 김주애는 마치 패션쇼라도 하듯 연일 새 옷을 갈아입으며 북한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250여만원에 달하는 세계적 명품을 걸치고 나타나더니 또 엊그제는 한국 언론을 의식해서인지 약 2만여원밖에 안 하는 중국제 옷을 입고 등장했다. 김정은은 김주애에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 오직 앞만 보고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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