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정치학 박사ㆍ고려대 강사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신년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업무에 전력을 다하고, 끝나면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임기를 마치면 잊힌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임기 말인 2022년 3월 30일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추대 법회에 참석해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잊혀진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의 잊힌 사람이 되겠다는 말은 최근 그의 행보가 부각되면서 다시 회자된다. 우선 ‘문재인입니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공개했다. 개봉일에 1만 3000명의 관객이 들어 박스 오피스 3위를 차지했다는 기사가 이어진다. 퇴임한지 1년도 안 된 데다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어 개봉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살아있는 동안 영화를 만들어 개봉한 것은 문 전 대통령이 최초라고 한다.

무엇보다 일부 공개된 내용에서 문 전 대통령이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졌다”고 탄식한 내용이 전해지면서 논란을 낳았다. “5년간 이룬 성취, 제가 이룬 성취라기보다 국민들이 대한민국이 함께 성취한 것인데 그것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허망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이 말에 유승민 전 바른정당 대표는 “착각도 자유라지만, 어이가 없다”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도대체 무슨 성취를 이루었다는 겁니까? 집값은 사상 최악으로 올려놓고, 소득주도성장으로 경제 망치고 나라빚만 늘리고, 김정은에게 속아 북의 핵개발만 도와주고,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할 개혁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국민의 심판으로 정권 넘겨준 거 아닙니까? 5년의 성취? 국민들은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라고 직격한 것이다.

최근에는 ‘평산책방 열정페이’ 논란이 잊혀지고 싶은 문 전 대통령을 강하게 소환했다. 평산책방은 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사저 옆에 낸 도서 판매점이다. 문 전 대통령이 옆집을 사서 책방으로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오픈한지 1주일 만에 1만여명이 다녀가고 책도 5500권을 넘게 팔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난리 났다는 뉴스다.

그런데 평산책방이 낸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가 문제였다. 평산책방은 SNS에 ‘평산책방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문을 올렸다. 내용은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 종일 8시간 자원봉사할 사람 50명을 선착순으로 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활동 혜택까지 제시했는데 “평산책방 굿즈, 점심식사 및 간식 제공”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단서로 점심 식사는 종일 봉사자에게만 제공한다고 했다. 즉 8시간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에게만 무료로 점심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공고는 청년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널리 퍼졌고 그런 와중에 ‘열정페이’ 논란이 제기됐다. ‘열정페이’라는 말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주지 않으면서 열정만을 요구한다는 뜻의 신조어”로 풀이되고 있다. 청년들의 어려운 취업 현실을 빗댄 말로, 아예 돈을 주지 않거나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주면서 일을 시키고 열정만을 요구하는 청년 노동 착취 행태를 비꼬면서 쓰인다. ‘평산책방 열정페이’는 평산책방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일을 시키지 않고, 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는 자원봉사자 모집을 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 공고를 보면, 근무 시간이 오전(10시~14시), 오후(14시~18시), 종일(10시~18시)로 나와 있고 그 옆에 “종일 봉사자만 식사 제공합니다”라고 별표가 돼 있다. 이를 두고도 사람들은 ‘10시~14시면 점심시간이 지나 배가 한참 고플 시간인데 밥도 안주고 보낸다고요? 참 인심도 사납네요. 사람이 먼저라더니 돈이 먼저네요!’라고 비꼬았다.

이 같은 비판이 커진 이유는 문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정책이나 그 전의 정치적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5년 7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할 때, 커피숍에서 ‘일일알바’ 체험을 하고 대학생들을 만나 “‘열정페이’라는 이름으로 청년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를 했던 것이다. 당시 문 대표는 ‘진짜 경제가 나타났다-청년 알바와의 대화’라는 행사를 개최하며 아르바이트 대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고 “박근혜 정부는 일자리 정책에 완전히 실패하면서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절망만 남겨줬다”며 비판했다. 아르바이트 관련 부당 노동행위에 대해 “당 청년위와 대학생위에 신고 창구를 개설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반값등록금 실현과 학자금대출제도 개선 등을 공언했다.

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을 슬로건으로 내걸며 최저 임금 인상을 임기 초 급격하게 진행시킨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자영업자들이 큰 고충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특히 자영업자들은 문 전 대통령이 정작 자신은, 최저 임금은 고사하고 아예 돈을 지급하지 않고 일을 시키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려 한다며 더욱 날선 비판을 한다. 관련 기사에는 ‘수익을 창출하는 공간에서 자원봉사가 말이 되나’ ‘최저 임금 왕창 올려 자영업자 힘들게 하더니 자신이 자영업 해보니 그 돈이 아깝던가’ ‘최저 시급에 휘둘리고 코로나 방역으로 나락간 한 명의 자영업자로서…(말이 험해 그 다음은 옮길 수가 없다)’ 등의 댓글들이 비슷한 취지로 수없이 이어진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평산책방으로 달려가 앞치마를 두르고 책방지기를 자처하며 문재인 전 대통령과 나란히 선 사진을 찍기 바쁘다. 이 대표 역시 열정페이를 강하게 비판했던 인물인데 평산책방 열정페이 논란은 알지도 못하는 듯 천진난만한 얼굴로 웃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재명 대표가 2017년 “열정페이 작살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열정페이 사례를 알려 달라, 전부 확인하겠다’라고 홍보하는 SNS 글을 소환하고 있다. 당시 이 대표는 “열정페이란? 재능있는 청년들에게 열정을 구실로 무임금 혹은 아주 적은 임금을 주면서 헌신을 강요하며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재능을 착취당하는 젊은이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재명과 공정사회의 첫 시작을 대한민국에 열정페이란 개념을 없애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라고 적었던 것이다. 네티즌들은 이 대표의 글에다 “평산책방을 여기에 신고하면 되는 거냐” 등의 물음을 올리고 있는 모양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말 잊힌 사람으로 살고 싶은 걸까? 여당은 문 전 대통령을 향해 잊히고 싶은 게 아니라 사실은 잊히는 게 두려운 거라 직격한다. 문 전 대통령이 정말 잊히고 싶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국민들에게 ‘평산책방 열정페이’ 논란 같은 실망은 다시 주지 않았으면 한다. 너무나 위선적이고, 누군가에게는 힘겹게 잊은 기억마저 되살아나 너무나 화가 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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