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타기 아닌 ‘줄서기’ 택한 尹

실익 없는 미국과의 포괄 협력

중러관계 ‘관리’ 필요성 조언도

日 요구만 많은 대일관계 개선

남북 강대강 속 돌파구 안보여

(워싱턴=연합뉴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2023.4.27
(워싱턴=연합뉴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2023.4.27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10일로 취임 1년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는 자유와 연대라는 가치외교로 대변된다는 평가다.

그간 계기가 될 때마다 수없이 들려온 단어인데, 지난 1년 윤 정부의 외교는 자유와 연대라는 가치를 명분으로 내세워 미국 주도의 자유 진영과 중러 중심의 권위주의 진영 사이에서의 ‘줄타기’ 외교가 아닌 ‘줄서기’를 분명히 했다.

미중 간 전략 경쟁 고조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진영 간 대결이 본격화한 가운데 당초부터 윤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유연성)’을 취했던 전임 정부와는 달리 선명한 외교 노선을 걷겠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가치외교라는 틀 속 일방주의 외교로 방향을 급격히 전환하다 보니 미국과 일본과는 가까워지는 대신 중국·러시아의 관계는 불안정성이 더 커졌고,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대립 구도는 더욱 짙어졌다.

그러다보니 핵‧미사일 위협 속 강대강 대치를 거듭하던 북한과의 관계는 경색국면을 넘어 단절의 시대로 접어든 상태다. 대북 강경 기조와 맞물린 확장억제력 강화와 한미‧한미일 공조만 있을 뿐 마땅한 외교적 돌파구는 없었다. 한 나라의 외교 노선은 안보 문제와도 직결돼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가지외교 선봉에 선 尹정부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자유와 연대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걸고, 한미동맹 강화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았다. 최근에는 민주주의 가치외교의 기반인 미국에 초밀착해 동참을 넘어 신냉전 질서를 주도하는 선봉장 역할까지 자임하고 나선 모양새다.

취임 11일만인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통적인 군사안보로부터 하위개념인 경제·기술에 이르기까지 포괄적 동맹관계 강화에 주력했고, 심지어 같은해 11월에는 아세안+3 정상회의(프놈펜선언)에서 ‘윤정부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놓으면서 대중국 견제의 최선봉에 서는 등 진영 외교를 공식화했다.

특히나 지난 4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 가능성과 함께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 반대를 외친 윤 대통령의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는 니편 내편을 나눈 ‘편가르기 외교’가 절정에 달한 장면이다. 윤 정부에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전략적 유화책을 취했던 중국 정부는 당장 “불장난하면 타 죽는다”며 격하게 반응했고, 러시아 당국은 “적대적인 반러 행동”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중러와의 관계를 말 몇마디로 순식간에 적대적으로 몰아간 것인데,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중러와 적대관계가 되지 않도록 관리해 실리를 챙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다고 미국과의 안보를 포함한 경제안보 협력 확대가 과연 한국에도 호혜적인지는 의문이 든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역시 굴욕에 가까운 외교를 반복했지만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등 현안은 협상한 흔적조차 없다. 모든 외교 자산을 투입해 얻어 온 건 핵협의그룹(NCG)뿐인데 실효성에 한계가 있는데다가 이는 역설적으로 동맹을 신뢰하지 못한데 기인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행태로 보면 가능성은 낮지만 윤 정부의 가치외교 노선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쏟아지는 이유다. 실제로 중러의 보복 가능성은 물론이거니와 북한이 남측을 겨냥한 전술핵 개발을 본격화한 가운데 작금의 진영 간 대결 구도 강화는 우리에게는 실체적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물꼬‧남북관계 험로

일본의 수출규제 등 보복조치로 냉각기를 걸었던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출범 전부터 강조해온 윤 정부는 ‘대일 굴욕’ 외교라는 말까지 듣고 있지만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장은 짐짓 호응하는 듯한 모습만 연출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저자세 외교에 이를 기화로 각종 현안에서 원하는 것들을 얻어내겠다는 투로 일관한다. 최근에는 일본 극우 매체들이 되려 윤 정부의 국정 지지도를 걱정해 주는 등 적극 지원해야한다며 입장이 바뀐 형국까지 됐다.

지난 3월 윤 정부가 내놓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해법이 대표적 사례인데 가해자 없는 배상안으로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는 시각도 있지만 일본의 전쟁범죄를 앞장서 합리화했다는 비판은 물론이고 한미일 동맹 구축의 장애물을 미국의 전략을 위해 제거해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해법 발표 직후 거의 실시간으로 나온 미국 정부의 환영 성명이 이를 여실이 증명한다.

윤 정부는 국내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미래를 위한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포장지를 씌웠지만 양측 간 주도권을 이미 일본에 넘겨줘 버린 셈이 됐다. 실제 이후에는 강제동원 이슈에 관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은커녕 독도, 위안부, 후쿠시마 오염수, 초계기 등의 모든 이슈에서 일본은 윤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당초 관측보다 빠른 지난 7~8일 한국을 찾아 정상회담을 가진 것도 오는 19일부터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오염수 방류에 대한 설득 작업에 앞서 밑자락을 깔기 위한 의도였다는 분석이 많다.

대신 북한에 대해서는 무척 강경한데 이 같은 외교 기조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북한도 지난해 역대 최다인 총 31회에 걸쳐 탄도미사일 63발을 발사했고, 11월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에 탄도미사일을 쏴 올렸다. 올해 들어서도 고체연료 추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첫 시험 발사하는 등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핵위협도 더욱 노골화했는데 지난해 9월 핵 선제공격 조건을 열거한 핵 무력 정책을 법제화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계기마다 핵을 부르짖고 전술핵탄두를 공개하는 등 남측을 겨냥한 직접적인 핵 협박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에 한미는 줄곧 대북억지력인 확장억제 강화로 맞대응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한미 연합연습 ‘을지자유의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를 복원했고, 10월께는 한미가 군용기 240여대를 동원한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도 실시됐다. 올해 3월에는 ‘자유의 방패’연합훈련을 역대 최장인 11일 연속으로 진행하며 2018년 중단된 대규모 야외 실기동훈련인 ‘독수리훈련(FE)’을 사실상 부활시켰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확장억제 강화를 담은 ‘워싱턴 선언’을 채택하는 등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수록 더 확고한 대비태세로 맞서겠다는 대북 강경 의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강대강 대치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데다 남북 연락채널도 끊기는 등 양측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심산이어서 경색국면을 넘어 단절의 시기로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또 대화의 문으로 열어뒀던 윤 정부의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도 실질적 비핵화를 어떻게 하겠다는 방법론이나 안전보장 내용이 빠져 있어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당시 담대한 구상을 발표한지 불과 나흘만에 “황당한 망상”이라는 등 거친 표현으로 맹비난한 터라 현재로선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끌 유인책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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