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서울시 동대문구 한 음식점 앞 흡연자들을 위한 야외용 테이블에는 담배 꽁초가 가득 차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흡연부스·구역 만들어 달라”
올초 시행된 금연구역 확대
오갈데 없는 흡연자 거리로
간접흡연에 행인들 괴로워

서울시내 금연구역 1만여곳
합법적 흡연공간 25곳뿐
흡연구역 의무화 법안 추진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 임산부 김혜란(27, 여)씨는 요즘 길을 걷는 게 곤욕이다. 보도나 골목길 곳곳에 담배를 피우면서 걷는 흡연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앞서 걷기라도 하면 담배 연기가 뒤쪽으로 흘러 어쩔 수 없이 간접흡연을 하게 된다. 빨리 걸어서 흡연자를 제치고 가고 싶지만 몸이 무거워 뜻대로 움직이는 데 벅차다. 김씨는 “정부의 금연정책 이후 올해 들어 길거리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며 “담배를 피우든 안 피우든 상관은 없는데 남들한테까지는 최소한 피해 없이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너무 괴롭다”고 한탄했다.

올해 1월 1일부터 ‘국민건강 증진법’ 개정에 따라 실내 금연구역이 확대돼 음식점과 커피숍 등의 흡연구역이 현저히 줄었다. 갈 곳을 잃은 흡연자들은 길거리로 나왔고, 이에 비흡연자들은 “간접흡연이 더 심각해졌다”고 토로했다.

지난 2일 서울시 동대문구 한 음식점 앞에는 음식점을 찾는 흡연자들을 위한 야외용 테이블이 있었다. 실내에선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법 때문에 음식점 앞 길거리에 따로 흡연 테이블을 만든 것이다. 테이블 위에 있는 재떨이에는 담뱃갑과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음식과 술을 먹다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손님들은 이 자리에 이 테이블로 나와서 피우고 들어간다. 테이블이 보도 중간에 있어 행인들은 담배 연기를 그대로 마신다.

근처가 회사라 이 길을 지난다는 전영선(가명, 32, 여)씨는 “퇴근길에 이 길을 지나면 정말 곤욕이다. 음식점 앞엔 3~4명의 흡연자가 항상 담배를 피우고 있다”며 “천식에 비염이 있어 담배 연기가 치명적이다. 담배 연기를 마시지 않으려고 일부러 돌아간다. 비흡연자가 피해를 보는 건 정말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흡연자들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별다른 대책 없이 실내 흡연을 금지하니 흡연을 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79.9%가 ‘길거리 흡연구역 조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흡연구역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은 20.1%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4배 가까이 높았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특히 비흡연자들이 더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필요하다는 응답자를 유형별로 보면 비흡연자가 80.6%, 흡연자가 77%로 더 높았다. 비흡연자 입장에선 길거리로 몰리는 담배 연기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함이고, 흡연자들 입장에선 제대로 된 흡연구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흡연자들의 흡연구역은 적다. 최근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에 존재하는 실외 금연구역은 금연거리 29곳을 포함해 총 1만 2141곳이지만 합법적인 흡연공간은 25곳으로 매우 적다. 그나마 있는 25곳의 흡연공간도 자치구 자본으로 설치된 공간은 6곳뿐이고, 나머지 19곳은 민간 자본으로 설치됐다. 게다가 24개 자치구 가운데 흡연공간이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 흡연자도 비흡연자도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닌 것이다.

현행법상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을 금연 구역으로 지정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흡연시설에 대한 설치 규정은 없다. 이와 관련해 흡연구역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추진된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은 지난달 3월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시 흡연시설의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긴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흡연자들도 흡연구역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비오 담배소비자협회 정책부장은 “흡연부스가 물론 필요하지만 예산이 가장 큰 문제다. 지자체에 흡연부스를 설치해달라고 하면 예산 문제로 불가능하다고 답한다”며 “설치가 되더라도 사후 관리가 되지 않아 기계가 망가지는 등 유지가 안 된다. 이 때문에 흡연자들이 문을 열어 놓거나 부스 근처에서 흡연해 모두가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이어 최 정책부장은 “반개방형 흡연부스나 흡연구역이 많아야 한다. 저비용 고효율인 흡연구역을 분산, 설치하면 간접흡연의 피해를 줄여야 불만의 목소리를 중재할 수 있다”며 “정해진 구역에서 흡연을 하면 비흡연자나 흡연자 간의 불만이 해소된다. 일본, 미국, 유럽에서는 이미 설치돼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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