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24~29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동맹 70주년 기념과 의회, 하버드대학 강연도 계획됐다. 역대 방문 때보다 극진하고 성대한 대우를 해줄 듯하다. 그런데 로이터와의 지난 18일 사전 인터뷰의 파장이 국내외적으로 만만치 않다. 러시아가 민간인을 대량 살상하고 국제법을 어기면 한국도 직접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발언과 더 나아가 대만해협에서 무력으로 현상 변경을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기사다. 모름지기 국익을 최선으로 해야 할 대통령이 일언중천금(一言重千金) 해도 부족한 판에 기자 앞에서 막 집어 던진 듯한 말이 아닌가 할 정도로 국민은 불안하다. 국제관계에서 국익을 위해선 악마와도 싸워야 하는 것이 외교이고, 대통령의 말은 항상 여지를 남기고 어떠한 말로 공격해도 예봉을 피할 수 있는 강력한 방어력을 담고 있어야 한다.

짜르 같은 권위주의적 푸틴이 작년 겨울 러·우 전쟁에 한국의 지원 문제에 우려를 표명했다. 러시아는 적을 더 만들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이 한국과 적대적 관계로 가는 코너로 몰면 되는가. 165개 기업과 7조원의 자산이 있다. 북한에 첨단 무기까지 지원할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러시아 과학자 1~2명만 북한에 가서 도와주면 미사일 궤도 재진입의 기술적 문제가 일거 해결된다. 한국이 이것을 바라고 있다는 말인가.

또 중국 관련 발언 중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말을 온 국민과 대통령이 들어야만 하는가. 중국도 타국 대통령 말을 폄훼하는 것은 국제 예의상 도가 아니다. 대통령이 쉽게 평가되는 것을 좋아할 국민은 없다. 다만 중국 측도 한·중 관계가 냉각기이고 대내외적 여건도 녹록지 않아 한국과 데땅트 분위기를 만들어나가 보려고 했다. 얼마 전 시진핑은 집권 후 거의 처음 한국의 엘지 디스플레이 공장을 1시간 이상 방문해 자기의 한국 경험과 한중협력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중국 CCTV는 한국 기업가를 TV에 등장시켜 인터뷰 하는 화면도 내보냈다. 중국의 경우 한국과 다르게 지도자 TV 장면들은 고도의 연출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 언론의 자유에 입각해 편집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화해 분위기를 만들려는 찰나 중국이 적대시하는 미국 방문 전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대만 문제를 언급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던 것이다. 지난번 문재인 대통령 방미 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바란다고 했을 때 내정의 문제라고 반발하지 않았던가. 평화와 안정이라는 단어는 중국이 항상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바란다는 표현을 하기에 일종의 중립자적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어 중국도 그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금번 현상 변경을 무력으로 하지 말라고 하는 발언은 미국이 쓰는 화법이고 이것은 완전히 적대국과 함께 대만 문제에 개입하겠다는 의미로 중국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국격을 지키는 길은 현상이라는 외형에서 찾는 것보다 본질이라는 실질적 내용인 국익에 있다. 국익을 제고시켜야 하는 외교는 관념적 이데올로기보다 한반도 평화, 안정, 통일이라는 대의에 복무하고, 여지를 남기는 방어적 함의를 포함해야만 하는 워딩과 실용이 국익의 시작점이자 끝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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