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비해 도시를 어떻게 바꿔나갈지 이정표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남 순천에서 10년째 정원해설사로 활동하는 50대 여성 K씨의 순천만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국가정원 1호인 순천만에서 10년 만에 열리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구름 인파’로 넘쳐나 신나기도 하지만, 그보다 정원을 매개로 순천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교(보성) 가서 주먹 자랑 말고, 여수 가서 돈 자랑 말며, 순천 가서는 인물 자랑하지 말라’는 얘기는 전남 지역에 떠도는 옛말 중 하나다.

K씨도 순천의 ‘참 인물’이다. 10년 전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접고 정원해설사의 길을 택하면서 생태와 기후를 걱정하는 시민이 됐다. 순천시가 초기에 정원해설사 60명을 모집했는데, 이 중 24명이 아직 활동 중이다. 10년 경력의 베테랑은 K씨를 포함해 7명이다.

“2013년엔 정원개념조차 잘 몰랐어요. 그간 정원법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정원 문화와 정원 산업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어요. 정원 가치를 알리는 이야기꾼으로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워요.”

고참 정원해설사답게 도시를 바라보는 안목이 남달랐다.

이달 초 개막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생태도시 순천의 명성을 더욱 널리 알리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10년 만에 열린 박람회인데도 주말에만 20만명 가까운 관람객으로 북적대고 있다. 생태를 주제로 한 기발한 프로젝트와 창의적인 시설, 공간들이 주목받고 있다. 10월 말까지 이어질 축제 기간 800만명의 관람객이 예상된다.

박람회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1.2㎞의 왕복 4차로 도로는 잔디밭과 산책로로 탈바꿈했다. 이산화탄소를 뿜어대는 자동차 대신 이 길을 따라 사람들이 편하게 순천만으로 걸어 다니고 있다. 도로 옆의 홍수 방지용 대형 저류조엔 맨발로 걸을 수 있는 쉼과 치유의 공간 ‘어싱길’이 조성됐다. 어둠이 깃들면 국가정원과 도로 양 옆의 어싱길, 동천 일대는 ‘빛의 정원’으로 변신해 낭만을 더해준다. 정원 곳곳에는 하룻밤을 지새울 수 있는 ‘가든 스테이’가 들어섰다. 삼나무로 지은 캐빈하우스에서 잠을 자며 시시각각 변하는 정원을 만끽할 수 있다.

K씨와 같은 시민들이 힘을 똘똘 뭉쳤기에 순천 정원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30대 여성 J씨도 정원 예찬론자다. 자신 스스로 ‘생태문화기획자’ ‘정원사’ ‘텃밭 교사’ ‘축제 기획자’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순천 정원의 역사를 정리한 ‘어딘가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라는 책을 지난해 펴냈다. 주민들과 함께 오래된 동네를 정원마을로 꾸민 경험을 바탕으로 식물과 정원을 통해 일상의 변화를 기획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순천정원박람회는 1990년대 동천~순천만 일대의 갈대, 흑두루미를 보호하려는 시민운동에서 비롯됐다. 시민들은 동천 골재 채취를 코앞에 두고 흑두루미 서식지 보호를 위해 동천 하류 생태계 토론회, 갯벌 습지 보존 세미나, 순천만갈대축제를 열었다.

시 당국이 1996년 순천만종합생태조사를 통해 다수의 멸종 희귀조류를 확인하고 골재채취허가를 취소했다. 이어 흑두루미 보호를 위해 순천만 인근의 전봇대 282개를 뽑아내는 지중화 사업을 벌이고, 순천만 주변 농지를 친환경단지로 지정했다. 순천만은 2003년 습지보호지역, 2006년 람사르습지, 2014년 1호 국가정원,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정원을 사랑하는 인물, 시민들을 대거 배출한 순천 덕분에 10년 전에 비해 정원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주택 외부로 한정됐던 정원이 실내정원, 옥상정원과 같이 일상과 긴밀히 연계된 휴양, 체험, 교육, 산업의 대상으로 진화했다. 국가정원은 순천만과 울산 태화강 2곳이고 경기 양평 세미원, 전남 담양 죽녹원, 경남 거창 창포원 등 전국 40곳에 지방정원이 조성 중이다. ‘죽음의 강’으로 불리던 태화강이 연어, 은어, 고니 등 동식물 1000여종의 터전인 ‘생명의 강’으로 부활했다. 국고 지원이 뒤따르는 정원 지정을 받으려고 지자체 간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정원 조성’ 바람이 불어 다행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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