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총선을 1년 앞두고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을 시행할 때 경제성과 정책 타당성을 검증토록 하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대상을 대폭 낮추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회기반시설(SOC)과 국가연구개발사업(R&D)의 예타 면제 금액 기준을 ‘총사업비 500억원(국비 300억원) 이상’에서 ‘1000억원(국비 500억원) 이상’으로 올리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국회 상임위 소위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도로·철도·공항 등의 지역 민원 사업도 사업비가 1000억원 미만이면 예타 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정치권이 선심성 사업에 필요한 입법처리에만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매번 싸움만을 반복해왔던 여야는 이번 개정안에는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여야는 예타 면제 기준을 올린 이유로 이 제도가 도입된 24년 전에 비해 경제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재정 건전성을 담보할 재정준칙법은 뒤로 쏙 빼놓은 게 문제였다.

2018년 약 68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1068조원으로 급증, 4년 만에 400조원이 늘었다. 나랏빚은 1분에 1억원씩 늘어나고 향후 4년간 채무 이자만 10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여기에다 올 초 세수가 급격히 줄면서 올해 약 20조원의 세수 결손이 예상되고 있다.

이같이 국민 살림살이에 쓸 돈이 쪼그라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각종 대규모 사업을 예타없이 벌이기만 하면 국가재정은 거덜 날 것이 분명하다.

당초 여야는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유지토록 의무화하는 ‘재정 준칙’과 이 법안을 함께 처리키로 했으나 재정 준칙의 내용에 대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자 예타 면제 법안부터 통과시켰다.

물론 예타를 한다고 해서 공공사업을 못 하는 것이 아니다. 타당하고 경제성이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판치는 상황에서 예타는 이를 막는 최소한의 제동 장치다. 여야는 이 장치마저 없애 경제성도 없는 사업을 마구 벌이겠다는 것이다.

역대 정권도 지역 균형 발전이나 사회·경제적 긴급 상황엔 예타를 생략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활용하곤 했다. 예타 면제는 이명박 정부 90건(61조원), 박근혜 정부 94건(25조원)에서 문재인 정부 때는 149건(120조원)으로 급증했다. 예타 제도를 점차 무력화시켜왔던 것이다.

특히 문 정부는 2020년 총선을 1년 앞두고 광역시·도별로 사업비가 24조원에 달하는 민원 사업 23개의 예타를 면제해주었다.

그동안 대표적인 부실사업이 우후죽순 설립된 지방 공항이었다. 대부분 지방 공항이 적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현재 가덕도 신공항에 이어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과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이 가시화되고 있다. 모두 여야 야합으로 특별법을 통해 예타를 면제키로 한 것들이다.

이미 예타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문턱마저 낮추면 정치권의 선심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여야는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는 예타 제도 변경을 멈추고 재정준칙 법제화부터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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