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119, 1천명 여론조사
10명 중 3명 직장 갑질 경험
48.5% “괴롭힘 수준 ‘심각’”
71.0% “대응해도 안 바뀔 것”

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1. 직장인 A씨는 지난 1월 12일 직장 상사로부터 받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1차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A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가하는 상사를 신고했지만 근무 장소 변경 등 A씨에 대한 보호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A씨는 2차 극단적 선택으로 결국 세상을 떠났다.

#2. “매일 매일 소리 지르는 건 일상입니다. 폭언도 물론입니다. ‘너는 머리가 모자라냐?’ ‘어디서 말을 그따위로 배워먹고 자랐냐?’ ‘니가 사장하지?’ 등의 발언을 합니다. 한번은 휴대폰을 집어던지려고 한 적도 있습니다. 업무 미숙을 이유로 정말 심하게 소리를 지르고 모욕적인 말을 매일 들었는데 소리를 지르고 인격모독을 하고 인간 이하의 대우를 하는 것을 ‘하드트레이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직원 모두가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정말 정신병 걸릴 것 같습니다.”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9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 있다(30.1%)’고 응답했다. 이들이 경험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는 ‘모욕·명예훼손(18.9%)’이 가장 많았다. 이어 ‘부당지시(16.9%)’, ‘폭행·폭언(14.4%)’, ‘업무 외 강요(11.9%)’, ‘따돌림·차별(11.1%)’ 순으로 조사됐다.

직장 내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는 응답은 과반에 가까운 48.5%로 나타났다. 이 비율을 자세히 살펴보면 비정규직(52.9%), 5인 미만(54.9%), 월 150만원 미만(58.3%)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직업군으론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65.4%)에서 가장 높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의료적 진료·상담 경험에 대해 물어본 결과, 진료나 상담이 필요할 정도의 괴롭힘을 경험한 이들의 비율은 34.8%였다. 28.2%는 ‘진료나 상담이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답했고, 6.6%는 ‘진료나 상담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본인이 자해 등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있다’는 응답은 10.6%로 나타났다. 10명 중 1명은 자해 등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는 것이다.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응 방법에 대해 물어본 결과,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가 59.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회사를 그만두었다(32.2%)’, ‘개인 또는 동료들과 항의했다(28.2%)’ 순으로 집계됐다. ‘신고했다’는 응답은 8.3%에 그쳤다.

직장 내 괴롭힘이 있어도 참거나 모르는 척하고 회사를 그만두거나 개인 또는 동료들에 항의를 한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10명 중 7명이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71.0%)’라고 답했다.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라는 응답도 17.0%로 나타났다.

신고한 이후 조치 의무가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해선 응답자의 63.9%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33.3%로 조사됐다.

지난해 1~12월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1913건 가운데 직장 내 괴롭힘은 1241건으로 64.9%를 차지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481건 중 ‘조치의무 위반’은 368건(76.5%),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는 212건(44.1%)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직장 내 괴롭힘 방치법’이 되지 않으려면 괴롭힘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지침’을 개정해 조사·조치의무 위반에 대해 ‘즉시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직장갑질119는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 무관용 원칙에 따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해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많은 경우에 법이 만들어졌어도 현실이 바로 바뀌지는 않는다”며 “시행 초기에 노동부나 검찰에서 엄정한 법 집행을 해야 현실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데 지금 그게 잘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사건이 생겼을 때 잘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기업의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며 “먼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직급을 나눠서 토론하는 등 실질적인 예방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조사(95% 신뢰수준, ±3.1% 포인트)는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3~10일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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