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

모가디슈 탈출‧수지 킴 사건 등도

일본군 위안부 한일 간 논의도 포함

외교부가 공개한 외교문서 일부. (외교문서 캡처) ⓒ천지일보 2023.04.07.
외교부가 공개한 외교문서 일부. (외교문서 캡처) ⓒ천지일보 2023.04.07.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옛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 몰락 이후 한국이 중국과 수교를 하고, 북한 핵이 국제사회 이슈로 본격 부각했던 1992년 외교 문서가 공개됐다.

이를 통해 당시 숨가빴던 우리 외교 현실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는데, 특히 최근 친일 굴욕 논란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 해법과 관련, 핵심 쟁점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내용도 담겨있어 주목을 받는다.

◆외교부, 1992년 외교문서 36만쪽 공개

외교부는 6일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 2361권, 36만여쪽에 대한 비밀을 해제했다.

문서에는 남북이 공동으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발표한 이듬해인 1992년도에 있었던 북한과 미국의 첫 고위급 회담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 핵시설 사찰 등과 한중수교를 둘러싼 주변국 반응이 담겼다.

다만 올해 공개된 문서에는 북미 간 오간 대화와 IAEA의 대북 핵시설 사찰 관련 내용이 상당 부분 비공개 처리됐다.

1992년 8월 한중수교 관련 문서들도 교섭 과정까지 다 들여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막후 분위기를 감지할 수는 있다. 중국은 한중수교가 실현되자 공식석상에선 자제했지만 내부적으로 ‘한·대만 단교’를 큰 성과로 여기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고 당시 방중했던 일본 사회당 인사가 전하기도 했다.

영화 ‘모가디슈(2021)’로 유명해진 1991년 ‘소말리아 남북 공관원 탈출’ 사건과 관련한 외교전문도 대상에 포함됐다.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1987년 외교문서도 추가로 공개됐다. 전두환 정권이 1987년 6월 항쟁 국면에서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했던 상황이나 일명 ‘수지 김 간첩조작사건’ 당시 전문도 확인할 수 있다.

◆한일협정 때 양측 모두 ‘개인권리 미해결’ 인식

무엇보다 문서에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당시 한일 인식도 나타났는데 최근 친일 굴욕 외교로 논란을 빚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입장과는 정면 배치돼 정치권 안팎에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어 관심이 집중됐다.

무슨 얘기냐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을 주도한 양국 협상 대표가 해당 협정으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데 공감대가 있었다는 증언이 이날 해제된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당시 두 나라의 인식은 강제동원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단과 큰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1991년 8월 3일부터 이틀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후 보상 국제포럼에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이었던 민충식 전 수석이 참석했는데, 주일대사관이 정리한 민 전 수석의 당시 발언에 따르면 그는 “당시 교섭 대표 간에도 동 협정은 정부 간 해결을 의미하며 개인의 권리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인식의 일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한일 두 나라의 인식과는 반대되는 대목인데, 실제로 일본 정부는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고,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제3자 변제안)을 언급하며 “청구권 협정은 한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을 일괄 대리해 일본의 지원금을 수령한다고 돼 있다”고 밝힌 바 있어 논란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게다가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 때 윤 대통령이 이런 문서를 들이대며 일본 측에 따질 일이었는 데도 되려 우리 대법원 판결이 문제라는 식의 발언을 내놔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대통령 자격조차 의문을 들게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과거사 현안으로 떠오른 초창기였던 당시 한일이 주고받은 논의 내용도 일부 드러났다.

1992년 2월 개최된 한일 과장급 업무협의에서 한국 측은 “보상 문제, 교과서 기술 문제 등 응분의 조치가 수반돼야 한다”고 촉구했고, 일본 측은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면서도 "1965년 청구권 협정을 문제 삼을 경우 한일관계의 기본 틀을 흔든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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