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탈출‧수지 킴 사건 등 비사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타결 당시 (출처: 연합뉴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타결 당시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옛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 몰락 이후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고, 북한 핵이 국제사회 이슈로 본격 부각했던 1992년 외교 문서가 공개됐다.

외교부는 6일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 2361권, 36만여쪽에 대한 비밀을 해제했다.

문서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미국 및 유엔, 중국, 일본 방문 ▲부시 미국 대통령, 옐친 러시아 대통령, 미야자와 일본 총리 및 찰스영국 왕세자 방한 ▲중국, 베트남, 앙골라, 탄자니아 등과의 국교수립 등이 담겼다.

특히 남북이 공동으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발표한 이듬해인 1992년도에 있었던 북한과 미국의 첫 고위급 회담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 핵시설 사찰 등 비사가 드러나 숨가빴던 북핵 외교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올해 공개된 문서에는 북미 간 오간 대화와 IAEA의 대북 핵시설 사찰 관련 내용이 상당 부분 비공개 처리됐다.

북방외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1992년 8월 한중수교 관련 문서들도 교섭 과정까지 다 들여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막후 분위기를 감지할 수는 있다.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과거사 현안으로 떠오른 초창기였던 당시 한일이 주고받은 논의 내용도 일부 나타났다.

1992년 2월 개최된 한일 과장급 업무협의에서 한국 측은 "보상 문제, 교과서 기술 문제 등 응분의 조치가 수반돼야 한다"고 촉구했고, 일본 측은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면서도 "1965년 청구권 협정을 문제 삼을 경우 한일관계의 기본 틀을 흔든다"고 우려했다.

영화 ‘모가디슈(2021)’로 유명해진 1991년 ‘소말리아 남북 공관원 탈출’ 사건과 관련한 외교전문도 대상에 포함됐다.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1987년 외교문서도 추가로 공개됐다. 전두환 정권이 1987년 6월 항쟁 국면에서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했던 상황이나 일명 ‘수지 김 간첩조작사건’ 당시 전문도 확인할 수 있다.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누구나 볼 수 있으며, 이달 말 ‘공개외교문서 열람·청구시스템’이 구축되면 온라인으로도 원문 정보 청구·열람이 가능하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총 30차례에 걸쳐 3만 5100여권, 약 500만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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