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많은 퇴근시간대 범행
‘윗선-행동책-알바’로 운영
학부모에 500만원 요구 전화
尹, 마약근절 총력 대응 지시

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 일대에서 ‘필로폰 음료’를 들고 있는 피의자들. (출처: 강남경찰서) ⓒ천지일보 2023.04.06.
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 일대에서 ‘필로폰 음료’를 들고 있는 피의자들. (출처: 강남경찰서) ⓒ천지일보 2023.04.06.

[천지일보=홍보영, 홍수영 기자]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고등학생들에게 마약 음료수 시음 행사를 벌인 사건이 충격을 던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퇴근 시간대에 버젓이 마약 성분이 든 음료수를 제공하고, 시음회를 지시한 사람이 피해 학생의 가족에게 협박까지 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범죄처럼 조직화한 범행으로 보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마약이 고등학생들에게까지 스며든 충격적인 일”이라며 마약 근절을 위한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

6일 경찰에 따르면 강남경찰서는 지난 3일 오후 6시쯤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와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 인근에서 2인 1조로 다니며 고교생을 대상으로 필로폰과 엑스터시 성분을 섞은 음료를 마시게 한 일당 4명 중 3명을 붙잡았다. 이들은 시음 행사에 ‘최근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에 좋은 음료수가 개발됐다’며 마약 성분이 든 액체를 마시게 했고, 이를 받아 마시고 신체 이상을 호소한 고교생은 이날까지 6명으로 집계됐다.

음료병에는 도용한 것으로 보이는 유명 제약사의 상호도 표기돼 있었으며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 메가 ADHD’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대치역 인근에서 음료를 건네받았다는 한 고교생은 언론에 “용기가 수상해 마시지 않았더니 연락처도 묻지 않더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필로폰과 엑시터시 성분이 검출된 이 음료를 마신 피해 학생들은 간이 검사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 차례 소량으로 마신 음료는 중독 위험이 크지 않다고 한다.

마약 성분이 든 음료 (출처: 강남경찰서) ⓒ천지일보 2023.04.06.
마약 성분이 든 음료 (출처: 강남경찰서) ⓒ천지일보 2023.04.06.

이들 일당은 무작위로 만나는 고교생에게 음료를 권한 뒤 받으면 학부모의 연락처를 받았다고 한다. 받은 연락처를 통해 해당 학생의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하지 않으면 자녀가 마약을 복용한 것을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금품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주범이 아닌 중간행동책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들은 검거 당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인터넷 글을 보고 지원했다”며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음료수인지는 몰랐다. 4시간에 15만원을 준다는 고액 아르바이트 행사로 알고 참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 중 2명은 범행이 보도되고 자수했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보이스피싱처럼 ‘윗선-중간행동책-아르바이트’ 구조로 범행을 기획했을 가능성 두고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피해 학생 학부모는 전화 통화에서 조선족(중국동포) 말투로 ‘당신 아이가 마약을 했다. 500만원을 송금하라’고 했다고 들었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에게 이런 식으로 마약을 복용하게 한 뒤 협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보이스피싱 조직 등의 관여 여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검거된 3명의 통화기록과 진술을 토대로 중간행동책을 검거해 신속히 주범 검거까지 완료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학원총연합회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학원 관계자·학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문을 발송했다. 수서경찰서도 유의사항을 담은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검·경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마약의 유통·판매 조직을 뿌리 뽑고, 범죄 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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