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전·현 간부에 지시 전달
1월 압수수색 통해 지령문 확보
北 “NL이 정의당 지도부 장악”
간부들 수차례 대북 보고문 보내

[서울=뉴시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강력범죄수사대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수도권북부지역본부 사무실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2023.03.14.
[서울=뉴시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강력범죄수사대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수도권북부지역본부 사무실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2023.03.14.

[천지일보=원민음 기자]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이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촉하고 지령을 받아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29일 이들이 받은 지령문 일부가 알려졌다. 이 지령문에는 청와대 등 주요 통치기관에 대한 송전망체계 마비 준비, 화성과 평택지역 군사기지 등의 비밀 자료 수집, 정의당 지도부 장악 시도 등도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민노총 받은 北 지령 120개 확보

국가정보원 등은 최근 압수수색에서 간부 A씨 등을 통해 “청와대 등 주요 통치기관들에 대한 송전망체계 자료를 입수해 이를 마비 하기 위한 준비 사업을 추진하라” “화성, 평택지역 군사기지, 화력발전소, LNG 저장시설, 항만 등 관련 비밀 자료 수집해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등의 이 같은 북측의 지령문 90여 건과 보고문 30여건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령문은 2019년 1월 북한이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 A씨에게 보낸 지령문 내용이다.

방첩당국이 확보한 대북 통신문건에는 송전망 등 국가핵심 기반시설 관련 자료 수집을 명령하는 내용 외에도 ▲방사능 오염수 방류·일장기 화형식 등 반일 감정 자극 ▲진보당(옛 통합진보당) 장악과 원내정당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지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북한은 또 반일감정 고조로 한일관계 파국을 조장하라는 지령도 여러 차례 보냈다. 북한은 2019년 7월 “일장기 화형식, 일본인 퇴출 운동, 대사관 및 영사관에 대한 기습시위 등을 비롯해 파격적인 반일투쟁들도 적극적으로 벌여 일본 것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반일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라”고 지시했다. 2019년 7월은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의 수출 규제에 나서는 등 무역 보복 여파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전개되는 등 반일감정이 끓어오르던 시기였다.

또 2021년 5월에는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를 걸고 민심을 부추겨 일본 것들을 극도로 자극하는 한편, 집권 세력을 압박해 이남당국과 일본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도록 조치하라”라며 반일 관련 이슈를 제기하라는 지시를 지속적으로 전달했다.

‘간첩단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18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나오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 2023.03.13.
‘간첩단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18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나오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 2023.03.13.

◆北, 진보당 장악 지시 지령도

북한은 A씨 등에게 “진보당을 장악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진보당을 통한 원내 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진보당은 2014년 정당해산심판으로 사라진 통합진보당의 후신이다. 검찰이 지난 15일 기소한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 사건에서도 같은 취지의 지령이 드러난 바 있다. 지령문 등에 따르면 북한은 “진보당은 대중의 관심을 끌고 그들의 심장을 틀어잡을 수 있는 대표 인물과 정책대안을 내놓지 못하고서는 그 어떤 부르주아 선거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없다”라며 진보당 침투를 주문했다.

북한은 또 민주노총 내부의 선거에도 관심을 보이며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의 당선을 도우라는 지령도 내렸다고 전해졌다. 양 위원장은 2020년 12월 민족해방(NL) 계열의 경기동부연합 출신으로는 처음 위원장에 선출됐다. 경기동부연합은 내란음모 혐의로 징역 9년 형을 받았다가 2021년 가석방된 통진당 이석기 전 의원이 속했던 단체다.

또 북한은 정의당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해 7월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에게 “정의당 지도부를 자주파(민족해방·NL)세력이 장악하도록 지원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주파가 주류인 진보당이 원내진입에 실패하자 평등파(민중민주·PD)가 다수인 정의당에 침투해 국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방첩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7월 지령문에서 “(민주노총) 정치위원회에서 연고체계를 이용해 정의당의 전 당 대표 이정미, 전 원내대표 배진교 등 자주적 경향이 강한 중진 인물들과 그 지지세력들과의 정책적 제휴, 연대투쟁을 활발히 벌여 10월 정의당 당직자 선거에서 자주 세력의 주요 인물들이 당 주요 지도부를 장악하도록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같은해 4월에도 “진보당과 연대 연합에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는 인천연합을 밀어주어 정의당 지도부 장악을 시도하라”는 내용의 지령문을 보냈다. 이 대표와 배 의원은 온건 성향의 민족해방 계열인 ‘인천연합’ 출신이다. 북한의 지시는 원내 진입에 실패한 진보당 대신 정의당을 장악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 정부 압박 지령도 여러 차례

북한은 현 정부를 압박하라는 지령도 여러 차례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월 17일에는 “각급 노조들을 발동해 윤석열 패들을 반대하는 투쟁 등을 적극적으로 벌이라”는 지령문을 보냈고, 6월 29일에는 “‘한·미 동맹은 전쟁동맹’ ‘평화파괴범 윤석열을 탄핵하자’ ‘남북 합의 이행’ 등의 구호를 들고 용산 대통령실과 정부청사, 윤석열 자택 주변에서 도로차단·포위행진·연좌시위들을 지속적으로 조직·전개하라”고 지시했다.

A씨 등은 수차례 대북 보고문을 보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결사옹위를 다짐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4일 발송한 대북 보고문에선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 사상은 인류의 단결과 연대, 평화를 앞당긴다”며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받들어 대를 이어 충성하자”고 했다. 앞서 1월 30일에는 “대를 이어 결사옹위하렵니다”라고 썼다.

한편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 ‘프레임 덧씌우기’라고 비판했다. 이들이 지난 15일 낸 성명서에서는 “민주노총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과 간단한 팩트체크만 거쳤어도 나오지 못할 기사”라며 “노조법 2, 3조 개정, 대우조선하청노동자의 투쟁을 북의 지령으로 인한 투쟁이라고 거짓 주장을 내놓더니 이젠 이태원 참사로 희생당한 유가족과 진실을 밝히기 위한 다양한 행사와 투쟁까지 소환해 욕을 보이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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