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콜럼버스, 정화 장군의 해외원정선인 정화 재무부선, 정화 장군의 동상.  (편집: 천지일보, 출처: 위키피디아.) ⓒ천지일보 2023.03.13.
왼쪽부터 콜럼버스, 정화 장군의 해외원정선인 정화 재무부선, 정화 장군의 동상. (편집: 천지일보, 출처: 위키피디아.) ⓒ천지일보 2023.03.13.

 

㈔굿파머스 사무총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정화장군의 대규모 해외원정단

7번이나 항해해 유럽상권 확보

반대 세력에 정책막혀 중단돼

권위주의 중국의 역사 속 한계

 

배 3척에 불과했던 콜럼버스

천동설 세상서 지동설 주장해

3번 좌절 끝에 후원세력 얻어

민주주의, 다른 대안 가능케

[핵심요약]

◆미-중, 사상‧체제 대립

지금 미-중의 충돌은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충돌이라고 한다. 지난 3월 10일 전인대 14기 1차 회의 제3차 전체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3연임이 확정됐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도 만장일치로 재선출됐다. 시진핑 주석은 시황제로 불린다. 시 주석의 한마디면 일사불란하게 추진되겠지만, 미래의 운명을 뒤바꿀 결정도 쉽게 내리게 된다. 1인의 잘못된 결정이 한 번만 있더라도 그 영향은 치명적이다.

◆글로벌 정치안보, 미래 내다봐야

변화된 사회를 담아낼 그릇을 만들지 못할 경우 15세기 중국와 유럽의 갈림길이 우리에게도 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시간에는 백터의 갈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겠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나타난다. 우리 앞에도 지금 벡터의 갈림길이 놓여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과 탁견 또한 안보의 영역일 것이며 이를 두고 정치안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
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

인류의 문명 발상지는 두 곳, 하나는 아프리카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인류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문명은 지중해를 거쳐 중동과 유럽으로 확산됐고, 중국에서 탄생한 문명은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확산됐다고 정리한다. 이 두 문명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모두 너른 평야와 하천을 끼고 있었다. 수십만년을 유라시아 대륙에 살면서도 서로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

◆중국-유럽의 달라진 운명

그런데 두 문명의 성패를 갈랐던 사건이 15세기에 일어났다. 대항해 시대로 불리던 시기다. 시작은 중국에서 비롯했다. 15세기 초 명나라 영락제 시기에 환관 출신의 정화 장군이 이끄는 해외원정대는 7차례에 걸쳐 현재의 동아시아 연안과 중동 지역을 거쳐 아프리카 동부해안까지 진출한다. 그 위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원정 선단의 규모는 수백척에 달했고, 1번 원정에 동원되는 인원도 수만명에 달했다. 해외원정단은 상선이었지만 이들을 보호하고 기착지역에서 상거래를 트기 위해 수많은 군대도 원정에 함께 나섰다. 중국의 문물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고, 유럽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1433년 영락제의 정책이 바뀌면서 8차 원정은 무산되고 명나라는 해외원정 자체를 중단한 채 폐쇄기조를 지속했다. 유럽 진출을 눈앞에 두고 중단된 것이다. 그 이유는 내부의 반대 세력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명나라의 원정이 중단된 이후 유럽은 중국 문물에 대한 향수가 커져갔다. 그러나 유라시아 대륙의 중간에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존재했기 때문에 육로를 거쳐 중국으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이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등장한다. 당시 유럽은 천동설이 지배하던 시절이었고, 바다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면 중국이 나올 것이라는 콜럼버스의 주장은 온갖 멸시를 받으며 무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된 시도로 스페인의 여왕 등 몇몇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항해를 떠나게 된다. 콜럼버스의 원정대는 배 3척에 불과했다고 한다. 오랜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은 중국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섬나라였다. 정작 콜럼버스는 신대륙에 상륙하지 못했지만 이후 수많은 도전이 계속됐고, 결국 아메리가 대륙은 유럽국가들이 차지하게 됐다. 아메리카 대륙을 넘은 유럽인들은 태평양을 거쳐 필리핀 인근 섬지역에서 중국과 접하게 된다. 15세기 말, 16세기의 일이다. 두 문명의 미래가 갈리는 시기였다.

◆황제 1인체제 중국의 한계

이 내용은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이 현상을 놓고 표면만을 보게 되면 중국 내부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원정이 중단된 반면, 유럽은 진취적인 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근본 원인을 찾아 들어가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중국은 너른 평원에 황제 1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체제였다. 전세계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던 최대 패권국이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으로부터 국가 승인을 받기 위해 조공을 바쳤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황제가 한번 거부하고 나면 다른 대안을 찾을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정화 장군은 황제의 변심으로 인해 세계정복을 눈앞에 두고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중화사상은 폐쇄적이 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유럽 각국의 침범으로 청나라가 무너지는 결과에 이른다. 그런데 유럽은 여러 나라와 다양한 정치권력이 존재했기 때문에 대안을 찾을 수 있었다. 콜럼버스는 세 번에 걸친 좌절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정치세력들과의 접촉을 통해 해외원정을 위한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만일 유럽에서도 1인 독재 또는 권위주의가 팽배해 있었다면 좌절에 그쳤을 것이다. 그 결과 2차례의 세계대전은 있었지만 서방권의 패권은 지금도 유지되어 오고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대부분 서방의 스탠다드가 됐다.

◆미-중 ‘권위-민주주의’ 충돌

지금 미-중의 충돌은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충돌이라고 한다. 지난 3월 10일 전인대 14기 1차 회의 제3차 전체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3연임이 확정됐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도 만장일치로 재선출됐다. 시진핑 주석은 시황제로 불린다. 시 주석의 한마디면 일사불란하게 추진되겠지만, 미래의 운명을 뒤바꿀 결정도 쉽게 내리게 된다. 1인의 잘못된 결정이 한 번만 있더라도 그 영향은 치명적이다. 대부분의 권위주의 국가들은 같은 처지다. 중국 중심의 세력에 결집되는 나라들을 보면 면면이 권위주의 국가들임을 알 수 있다.

반면 미국 중심으로 결집되는 나라들은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다. 지도자나 정권이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되면 국민에 의해 정치세력을 바꿀 수 있다. 대안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만일 14세기 당시 중국에 다양한 대안이 존재했다면 정화 장군은 다른 정치세력에게 원정을 요청할 수 있었을 것이며 지금 세계의 판도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콜럼버스가 다른 대안이 없었다면 해외원정을 가지 못했을 것이며, 지금의 세상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 문제에 만일은 없지만 현 시대에 반면교사를 삼기 위해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이란 가정을 설정하고 전혀 다른 결과를 추론하는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 성숙한 문화 필요

문제의 해결에는 가까운 원인들을 표면적으로 치유하는 방식과 궁극의 원인을 찾아 근본적 지유를 하는 방식이 있다. 후자는 시간이 걸리고 더 많은 고통이 따르지만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다.

우리나라의 사례를 보자. 우리 헌법은 1987년에 만들어졌다. 이후 한국사회는 민주화가 빠르게 진행됐고, 더불어 경제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그런데 정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헌법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 비록 1987년 헌법이 민주화 과정을 담고 있지만, 여전히 이전의 권위주의 체제의 잔재를 담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지나칠 정도로 집중되어 있다 보니 5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대선의 결과에 따라 사회는 요동친다. 한번 권력을 잡기 위해 올인한다.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진화된 사회를 담을 구조개혁은 장기에 걸쳐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야 한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어려웠던 시절에 형성된 각종 제도와 관행, 법규와 원칙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져야 한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관료사회도 정권교체에 따라 부침이 심할 수밖에 없다. 권력을 견제해야 할 국회도 역시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인다. 서로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성숙한 문화를 찾아보기 점점 더 어렵다.

결국 변화된 사회를 담아낼 그릇을 만들지 못할 경우 15세기 중국와 유럽의 갈림길이 우리에게도 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시간에는 백터의 갈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겠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나타난다는 진리는 단순히 수학에만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은 역사적으로 증명되곤 한다. 우리 앞에도 지금 벡터의 갈림길이 놓여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과 탁견 또한 안보의 영역일 것이며 이를 두고 정치안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용어설명]

◆정화장군

정화(1371~1434, 본명: 마삼보)는 중국 명나라 왕조 시대의 장군이자 환관, 무관, 제독, 전략가, 탐험가, 외교관, 정치가이다. 영락제의 심복으로 영락제의 명령에 따라 남해에 일곱 차례의 대원정을 떠난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 성씨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중국식 한자인 마(馬)씨인데, 이는 중국 전통시대 이슬람교 신자들이 마씨를 성으로 삼은 풍습에서 유래한다. 환관의 최고위직인 태감에 올라 중국에서는 삼보태감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동남아시아, 인도를 거쳐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까지 항해했고, 가장 멀리까지 도달한 지점은 아프리카 동해안의 말린디(현 케냐 말린디)였다.

◆콜럼버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는 이탈리아의 탐험가이다. 4번에 걸친 항해(1492~93, 1493~96, 1498~1500, 1502~04)를 통해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탐험하고 개발 및 정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콜럼버스는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 여왕을 만나 항해계획을 제출하고, 1492년 4월 항해를 허용한다는 산타페 협약을 체결했다. 10월 12일에 현재 와틀링 섬이라고 불리는 바하마 제도의 한 섬에 도착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인도의 한 부분에 도착한 것으로 확신했다. 이후에도 2차례에 걸쳐 황금과 향료를 찾기 위한 항해를 시도했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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