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야간 근무·선정적 노출
다이어트·성형수술 권유까지
휴식·수면·인격권 침해 ‘만연’
교육 못받아 미래 악영향 끼쳐

아동 절반 “하루 수면 4~6시간”
인권위, 실태조사 및 개선 권고
“샤프롱 등 해외사례 검토하고
근무시간 ‘근로기준법’ 맞춰야”

지난해 서면 놀이마루에서 청소년수련시설 연합축제가 열리고 있다. 천지일보 DB.
지난해 서면 놀이마루에서 청소년수련시설 연합축제가 열리고 있다. 천지일보 DB.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최근 미디어 콘텐츠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발전하고 대중문화예술산업에 관한 관심도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아동·청소년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내린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인권개선 권고에 대해 정부가 대부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고 밝혔다.

3일 인권위에 따르면 대중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동·청소년들은 과거에 비해 차츰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업자들의 낮은 문제 인식 탓에 각종 인권침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시간 또는 밤샘 작업으로 인한 휴식권·수면권 침해나 신체적 체벌 및 지나친 꾸짖음(욕설)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 위험하고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의 근무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한때 ‘아동 성 상품화’ 논란이 돼 다음날 바로 광고를 내렸던 배스킨라빈스 등 미성년자가 과도하게 노출된 복장으로 출연하거나 선정적인 장면을 연출해 논란을 빚은 사례들도 포함된다. 최근에는 로미오와 줄리엣(1968)에 출연했던 올리비아 핫세(71)가 최근에서야 16살 당시 누드 촬영 등 학대와 착취를 당했다고 고백하며 제작자를 고소한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아동·청소년에 대한 인권침해는 인격권뿐 아니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침해 등 그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인권위가 벌인 ‘대중문화산업 종사 아동·청소년 인권상황 실태조사(2020)’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은 휴식권 및 수면권과 신체적·정신적 건강권, 학습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제작 현장에서 대중문화예술사업자나 그 소속 종사자로부터 폭언·폭행·괴롭힘을 당하고, 다이어트 및 성형수술 권유를 받는 등의 인권침해를 당하는가 하면, 나이나 외모, 신체조건 등으로 인한 차별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어려서 잘 모른다’라는 인식하에 통제의 대상으로 여겨져 휴대전화·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이나 연애가 금지되는 등 사생활의 비밀과 자기 결정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78명 중 촬영 기간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4~6시간’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57.7%(45명),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16.7%(13명)에 달했다. 또 촬영 기간 신체적으로 아프거나 다쳤던 경험이 있다는 비율이 14.1%(11명), 촬영대기 장소가 없거나 부족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23.1%(18명)로 나타났다.

인권위 아동청소년인권과 관계자는 본지에 “욕설·폭언·선정적인 연출 등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문제”라며 “밤샘 촬영하면서 너무 졸려 각성제를 먹고 연기해야 했다거나 살찔까 봐 먹고 싶은 거도 못 먹게 한 사례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촬영하면서 공부를 못해 나중에 연기를 관두면 기초지식이 없으니까 막상 다른 곳에서 일하려고 할 때 적응하지 못하고 망가지는 사례 등 다양한 인권침해가 확인된다”며 “무엇보다 아동·청소년 인권침해에 대한 여론, 인식과 함께 관련 법 제·개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로기준법과 차이나는 문화예술법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한 ‘근무시간’ 문제도 있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제22조·23조는 15세를 기준으로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용역 제공시간을 달리 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15세 미만의 경우 1주 35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15세 이상은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또 15세 이상의 경우 아동·청소년과의 합의에 따라 하루 1시간, 1주 6시간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인권위는 근로기준법상 성인의 근로시간과 동일한 1주 40시간 용역을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근로기준법 제69조에서 15세 이상 18세 미만의 아동·청소년 근로시간을 1주 35시간(하루 1시간, 1주 5시간 한도 연장 가능)으로 정한 취지에 비춰볼 때 과도하다는 이유에서다.

밤샘 근무 문제도 있다. 원칙적으론 대중문화예술 사업자는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에게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일하게 할 수 없다. 다만 15세 이상 아동·청소년은 본인과 그 친권자 또는 후견인이 동의하면 다음 날이 학교 휴일이 아니어도 야간·새벽까지도 일할 수 있다. 15세 미만은 다음 날이 학교 휴일인 경우에만 그 친권자 또는 후견인의 동의가 있으면 용역 제공일 자정까지 일할 수 있게끔 해놨다.

▲ 경기도내 7개 학교가 참여해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별무리극장에서 개최하는 ‘경기 아동·청소년 예술 페스티벌 in 안산(페스티벌)’이 오는 9월 1일부터 3일까지 개최된다. 사진은 페스티벌 1일차인 9월 1일에는 공연되는 안산디자인문화고등학교의 택시드리벌 한 장면. (제공: 안산문화재단)
사진은 아동·청소년 예술 페스티벌 1일차인 9월 1일에는 공연되는 안산디자인문화고등학교의 택시드리벌 한 장면. (제공: 안산문화재단)

이에 인권위는 15세 이상 용역 제공시간을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근로시간 1주 35시간 범위로 제한하고, 용역 제공일 다음 날이 학교 휴일인 경우에 한해 오후 10시 이후의 시간에 용역 제공이 가능하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표명했다.

이와 관련 인권위 관계자는 본지에 “우리나라가 치열한 경쟁 사회다 보니 대중문화계에서도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들이 성공을 위한 욕심이 큰 편이다. 성공에 집중하다 보면 아이의 입장을 충분히 생각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인권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보호자들이 아이들의 인권에 대해 인지하는 부분도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전했다.

◆해외 다른 나라들 사례 보니

우리나라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용역 제공시간을 단순히 15세 미만과 그 이상으로만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6개월, 2세, 6세, 9세, 18세 미만, 프랑스는 3개월, 6개월, 3세, 6세, 11세, 16세 미만, 영국은 5세, 9세 미만, 9세 이상으로 더 촘촘하게 구분하고 학기와 비학기로 구분해놨다.

신체적·정신적 건강권 문제도 여전하다. 실태조사 결과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은 악역이나 범죄 피해자 등 충격적이거나 정서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과도한 표현의 연기, 위험한 촬영 작업 등으로 건강 침해가 우려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또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은 성인과 큰 차이가 없는 작업 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많은 이들이 촬영 현장에서 가장 불편한 점으로 장시간 또는 야간 촬영, 대기실 부재 등을 지목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다 사고 예방과 사고 발생 시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한 안전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영국과 캐나다는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자격을 승인받은 ‘샤프롱(보살펴 주는 사람)’을 제작 현장에 둬야 한다. 미국은 아동·청소년의 건강과 안전, 복지를 돌보고 관리할 수 있는 책임자가 제작 현장에 상주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작 현장에서 아동·청소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악화하지 않게 적절한 지원과 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아동보호 책임자(가칭)’를 둬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인권위 관계자는 “과거 한국에서 아동들이 많이 출연하는 외국 뮤지컬이 진행된 적이 있었는데 팀이 올 때 샤프롱이 같이 와서 아이들 안전 하나하나를 살피고 아동학대나 침해가 있으면 적극 개선하는 역할을 했었다”며 “외국은 아동·청소년 10명에 샤프롱 1명 이런 식으로 법제화가 돼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아동발달에 맞춰 연령대별로 용역 제공시간이나 단서조항을 세부적으로 정해놓은 선진 사례도 있다”며 “아동·청소년 용역 제공시간의 경우 영·유아, 취학 단계, 학기 중 여부 등 연령에 따른 아동·청소년의 성장·발달 단계에서의 특성을 고려해 세분화하고 법률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 개선 나선다지만 한계점도

인권위는 그간 실태조사에 이어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 장관에게 관련 법을 개정해 아동 청소년의 휴식권·수면권·건강권·학습권을 보장하고,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한 권리구제 절차를 강화하며, 사업자의 인권 인식을 개선할 것 등을 권고한 바 있다.

▲ 청소년 댄스동아리 경연대회 시상하는 장면 (제공: 천안시)
▲ 청소년 댄스동아리 경연대회 시상하는 장면 (제공: 천안시)

이어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법·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먼저 문체부는 현장 의견수렴 등을 거쳐 법 개정을 추진하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대중문화산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적극 논의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대중문화예술기획업자 법정 교육에 아동·청소년 인권 증진을 위한 내용을 반영하고 교육부의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 TF 논의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올해는 지난해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인권 보호 가이드라인 제작을 위한 기초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작 배포할 예정이다.

또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체육·예술 등 전문분야 활동, 장기 결석 등 수업 참여가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학습 콘텐츠 및 온라인 튜터링 제공 등을 포함한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2023~2027)을 수립했다. 이어 올해는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지원 대상 명확화를 위한 기준을 마련하고 구체적인 지원방안 모색을 위해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에 정부가 대중문화산업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논의되도록 지원한다고 했으나 애초 이 개정안에 주요 권고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는 문제도 거론된다.

계류 중인 대중문화산업법 개정안에는 법정 교육 대상을 현행 기획업자를 포함한 용역계약 체결 기획업체 소속 직원과 제작업자·소속 직원까지 확대하라는 내용 등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문체부에서 준비작업을 하고 있거나 착수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별도의 정부 입법 계획이 없다”며 “발의안에는 근로기준법에 준하라는 내용만 담고 있고, 다음날 학교가 휴일인 경우에 한해 밤샘 근무를 허용하게 하라는 세부적인 단서조항도 있었는데 이번에 반영되지 못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와 관련한 교육 대상 확대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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