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23일 현재 연 3.50%인 기준금리를 조정 없이 동결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21년 8월 이후 약 1년 반 동안 이어온 기준금리 인상 행진을 멈췄다.

우리나라 경제가 지난해 4분기부터 뒷걸음치기 시작한데다 수출·소비 등 경기 지표가 갈수록 나빠지기 때문이다. 추가 금리 인상으로 소비·투자를 더 위축시키기보다 일단 이전 인상의 물가 안정 효과나 경기 타격 정도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은 말이 아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2%로, 5% 이상 고물가가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1월 실업률은 1년 전보다 조금 내렸지만 그 사이 급등한 물가 탓에 경제고통지수는 1년 전보다 높아졌다.

지난달 경제고통지수는 1월 기준으로 통계방식이 바뀐 1999년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해 산출하는 경제고통지수는 수치가 높을수록 국민의 삶이 팍팍하다는 것을 뜻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 미중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이라는 이례적 대외변수가 중첩된 탓에 지금 한국 경제는 고물가와 고용불안을 동시에 겪고 있다.

특히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인한 공공요금 상승 때문에 많은 국민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반 가계, 자영업자 가릴 것 없이 배 이상 치솟은 전기·가스요금 폭탄에 한숨을 푹 내쉰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목욕, 숙박업 등에선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

실업자수는 1년 만에 다시 100만명을 넘어섰다. 대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건설경기까지 얼어붙어 고용도 금세 나아지길 기대하기가 어렵다.

정부는 상반기 중 공공요금을 동결하기로 했지만, 관련 공기업 적자가 폭증하는 전기·가스요금은 올봄 추가로 인상할 전망이다. 그나마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중단한 것은 서민들에게 긴 가뭄 끝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계속된 대출이자상승에 압박을 받은 서민, 자영업자 등은 그나마 숨고르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기준금리 조정을 통해 경제 위기 해법을 찾으려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경제 앞에는 금리 상승뿐 아니라 국제 정세 불안, 보호 무역주의 대두, 세계적인 물가 등의 악재가 켜켜이 쌓여 있는 형국이다.

지금의 복합 위기는 때가 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상황이 더욱 악화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정치권도 더는 정파적인 싸움에 힘을 쏟지 말고 국가의 근본인 민생을 보듬는 데 집중해주길 바란다. 정부는 가용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현재의 경제 위기 국면을 타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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