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다시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시는 정치의 중심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며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았던 국정원이 불행하게도 다시 정치의 중심에 섰다. 이번에는 국정원도 작정한 듯 ‘국정원 직원 일동’이라는 단체 명의의 성명서까지 발표하며 언론과 야당을 비난했다. 이는 처음 보는 낯선 일이며 그간 달라진 국정원의 모습은 더욱 아니다.

우리는 거듭 국정원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국정원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느 국민이 국정원을 향해 돌을 던지고 싶겠는가.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그들의 대북 첩보활동에 오히려 박수를 보낼 일이다. 그래서 국민적 신뢰를 받는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랐던 것이다. 이는 불과 1년여 전의 국정원 댓글 사건의 교훈이요, 반성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또 해킹 논란이다. 쉬쉬하면서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들여온 해킹 프로그램이 국민을 사찰하는 데 활용됐는지의 여부가 쟁점이다. 물론 이병호 국정원장이 국회에서 밝힌 대로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의혹이 있다면 철저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저절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의혹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에 대한 조사를 해봤더니 국정원의 발표가 맞다면 그보다 더한 신뢰를 어디서 얻겠는가. 신뢰가 흔들리는 국정원 입장에서는 지금의 국면이 새로운 기회이기도 한 셈이다. 물론 국정원 발표가 사실이라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를 일차적으로 밝혀야 할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거의 막장 수준이다. 한마디로 진실규명이 아니라 진실규명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여당의 일부 의원들은 아예 국정원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 진실을 밝히려는 동료 의원들을 향해 거친 언사까지 쏟아내고 있다. 국민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정치권이 다시 막장으로 가는 것일까.

진실규명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걸핏하면 국가안보를 내세운다. 국가안보는 그들만의 방패막이 아닐진대 어찌 국정원의 불법행위 여부를 밝히는 작업을 이런 식으로 비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뭔가를 숨기려는 의도가 아닌지 더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정말로 국가안보에 중요한 문서나 증거라면 별도의 보호장치를 강구하면 될 일이다. 철저하게 비밀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안보를 망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떳떳하다면 여당도 국민의 대표 입장에서 진실규명에 나서야 한다. 어설픈 국정원 대변인 노릇은 보기가 참으로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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