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해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출범한 후 미국판 세계경제 편가르기가 이뤄졌다는 비판이 일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미국이 이를 저지 하기 위해 협력체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아세안 입장에서는 미국의 편을 들기 위해 이 기구에 참여한 게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중국과 미국에 대한 대외정책과 균형외교 전략의 일환일 뿐이라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이 자국과 아사아 등 현 상황을 분석한 기고문을 보내와 번역해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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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지난해 5월 23일 도쿄 이즈미 가든 갤러리에서 열린 번영을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출처: AP, 연합뉴스)

미국 주도로 탄생한 경제협력체

-중 갈등에 휘말리는 아세안

편가르기 거부한 아세안 3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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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

지난 20225월 미국 주도의 IPEF가 공식 출범했다. IPEF는 전 세계 GDP의 약 40%, 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경제협의체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CPTTP)보다 큰 경제 협력체제로 알려져 있다. IPEF는 관세 철폐 및 인하를 목적으로 하는 전통적인 자유무역협정(FTA)과는 다르게 디지털 경제 및 기술표준 공급망 회복 탈탄소·청정에너지 사회간접자본 노동기준 등 신()통상의제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목표를 갖고 있다.

특히 글로벌 무역과 공급망, 탈탄소·인프라, 탈세·부패 방지 등 4대 의제에 집중한다. 기존 FTA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신통상분야에서 규범과 협력체계 마련에 방점을 찍고 있다. IPEF는 일괄 타결이 아닌 항목별 협상이 가능하며, 조약이 아닌 행정협정이기 때문에 국회 비준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그럴듯해 보이는 명분의제와 달리, IPEF는 뭔가 다른 숨은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여러 정치경제 전문가들은 “IPEF는 미국판 세계경제 편가르기라고 드러내놓고 비판한다. 라이벌인 중국이 일대일로정책과 함께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인 RCEP을 주도하는 등 인도·태평양 지역 경제 영토 확장에 나서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려고 하자, 이를 저지할 목적으로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해 이루어졌다는 해석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전략(Indo-Pacific Strategy)의 경제적 도구로, 미국 중심의 지역 경제질서를 새롭게 쓰고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일종의 내편 만들기세계경제협의체라고 보는 것이다.

14개국 참여 의사 밝힌 IPEF

2월 현재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브루나이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아세안 7개국과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모두 14개국이 IPEF에 참여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IPEF 참여국의 면면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절반이 아세안지역에 속해 있다. 아세안 7개국 모두가 IPFE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뭘까.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대응하는 아세안 각국들의 복잡한 속내와 계산이 깔려 있다. ‘균형외교라는 대원칙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아세안국가들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적극 환영하면서도 동시에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해왔다. 아세안국가들 입장에선 최근 미국의 영향력이 중국에 견줘 부쩍 작아진 점이 내심 불안하다. 미국이 국제 질서를 이끄는 초강대국이자 상식이 통하는 민주주의국가라서? 그저 미국이 좋아서? 그럴리가 없다.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을 치렀고, 필리핀은 오랜 기간 미국의 식민지였다.

아세안국가들은 최근 미국과 중국의 아세안 지역 내 영향력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현실을 불안한 눈초리로 보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 시발점은 과거 트럼프 행정부에서 출발한다. 트럼프 취임 직후인 2017년 당시 미국 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미국이 인도·태평양지역 경제질서를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반면 중국은 이 틈에 일대일로정책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중심으로 동남아 지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따라서 현재 미국 입장에선 중국을 견제하는 가운데 자국의 리더십을 드높일 새 이니셔티브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IPEF라고 할 수 있다.

아세안국가들은 여전히 강대국 미국이 아세안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 2경제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영향력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기를 바라고 있다. 아세안은 힘의 균형 차원에서 미국이 과거 오바마 행정부 때처럼 인도·태평양지역에서 좀 더 제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엄밀히 따져보면 IPEF 참여로 당장 거대 미국시장에 접근성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IPEF는 아세안 국가의 미국 시장 접근 확대에 관해 아무런 미래를 기약하지 못한다. 경제적 실익도 크게 없다. 그럼에도 아세안 7개국이 IPEF 협상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균형을 잡기 위함이다. 싱가폴은 개방무역을 지지하는 국가이니 당연히 적극 참여의사를 밝혔을 것이다. 다른 아세안 국가들은 4개 부문 모두 참여하지 않고 일부 부문만 선택적 참여가 가능해 부담을 덜었다. 게다가 협상 결과에 따라 마음에 안 들면, 중도에 발을 뺄 수도 있다. 미국이 무엇을 얼마나 줄 것인지에 따라 향후 IPEF 참여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불참

캄보디아를 비롯한 라오스와 미얀마 등이 IPEF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이들 세 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가 채 안 되는 아세안 최빈국들이다. 다른 아세안국가들에 견줘 유독 중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나라들이다. 어쩌면 이 때문에 애당초 미국의 초대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대중국 경제의존도가 높은 캄보디아와 라오스, 미얀마 같은 나라들은 중국을 자극하는 위험을 자초하면서 IPEF에 참여할 필요는 없었다. 미국의 편가르기에 편승해 얻는 이득보다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이득이 크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미국은 세 나라와 너무 멀리 떨어진 이웃이다. IPEF 참여로 당장의 경제적 혜택을 보는 것도 아니다. IPEF가 미국 의회 비준을 받는 FTA가 아니기 때문에 지속가능성 문제도 있다. 미국 정권이 바뀌면 쉽게 사라질 수도 있는 협의체라는 말이다.

내용도 문제다. 아세안 국가들이 노동과 기후변화, 부패, 투명성 같은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적잖게 부담스럽다. 불참한 3개국은 사실 이런 기준을 맞추는 게 불가능하다. 반도체나 석유 등 에너지 등 공급망 이슈는 매우 조심스럽다. 자칫 아세안과 중국의 경제관계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 하지만 이들 3개국이 IPEF 참여를 하지 않은 가장 큰 현실적 이유는 따로 있다. 미국의 일방적 편가르기에 굳이 동참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 캄보디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IPEF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밝힌 적도 없다. 미국은 이번에 참여하지 않은 캄보디아와 라오스, 미얀마를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후로도 숨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이들 나라들 역시 미국의 제안에 참여의사를 언제든 밝힐 것이다. 느긋한 편은 오히려 이들 3개국이다. 몸값이 더 올라간 셈이다.

중요한 것은 캄보디아를 포함한 대부분의 아세안 국가들은 한쪽 편들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 어느 편에도 속하기를 꺼릴 뿐만 아니라, 양쪽 모두와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기만 바란다.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는 동시에 미국에게도 같은 지원을 기대하며 양쪽을 유인하는 접근 방식이 최선이다.

아세안, ‘-편들기 원치 않아

아세안이 이런 외교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아세안이 약소국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약소국들이기에 강대국 경쟁 틈바구니에서 균형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강대국 간 경쟁을 활용해 이익을 극대화한 경험이 많다. 단기간에 만들어진 경험도 아니다. 과거 프랑스와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을 비롯해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끊임없이 교차해온 동남아에서 오랫동안 터득한 나름의 생존방식이다.

강대국 간 힘의 균형이 생기면 아세안 국가들의 자율적 공간과 강대국에 대한 협상력은 커지는 법이다. 팽팽한 균형을 이룬 강대국들은 저마다 아세안 국가의 지지를 얻어 힘의 균형을 깨려할 것이고 아세안 국가들의 몸값은 올라간다. 아세안은 강대국들로부터 더 많은 지원과 양보를 얻어 낼 수 있다.

따라서 IPEF에 참여한 나라와 참여하지 않은 나라로 미국과 친하니 중국과 친하니 하는 식의 이분법적 논리와 단순 시각으로 이 나라들을 평가하거나 작은 프레임 안에 가둬 놔선 안 된다.

사실 아세안 지역 모든 국가들의 중국과 미국에 대한 대외정책과 균형외교는 매우 일관적이었으며, 큰 맥락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미국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세안 이익에 부합한다는 판단되면 각자의 방식대로 조금은 다르게 실행에 옮기는 것일 뿐이다.

#IPEF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미중 갈등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RC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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