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해녀. “아마의 기원은 제주 해녀”라고 인정했던 일본학자들이 입장을 철회했다. (사진제공: 문화재청)

일본의 메이지시대 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이미 엎질러진 물
제주 해녀 유네스코 등재, 일본 아마에 발목 잡히는 일 없어야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뭐든 열정과 열심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혹여 그 끝이 흐지부지할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도 있으니 이는 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는 뉘우쳐도 소용없다는 의미다.

요즘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관련된 우리 정부와 관계 부처, 관련 단체들이 하는 일을 보고 있으면 딱 생각나는 말이다. 물론 지난 4일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 등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쾌거가 있었지만 하루 차이로 일본의 메이지시대 산업시설 또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우리 정부의 외교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메이지시대 산업시설 중에는 군함도와 나가사키조선소 등 조선인 5만 7900여명이 강제로 징용돼 노동을 하다 수천명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강제노역 시설 7곳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5월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이 포함된 일본의 메이지시대 산업시설이 유네스코 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이코모스)의 등재 권고를 받은 후에야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결과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늘 발등에 불이 떨어진 뒤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는 정부와 관련 부처의 안일함과 무관심함에 이제 국민은 실망하기에도 지친 듯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 일색이다. “일본을 뭐라고 할 게 아니라 무능한 정부를 탓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지난해 1월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에 조선인 강제노동 시설을 포함한 근대산업시설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한·일 양국 간 줄다리가 지속됐지만 세계유산위원회는 결국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국제 사회의 여론을 의식한 듯 등재결정문 아래 주석을 달아 일본 근대산업시설에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토록 했다.

일본은 독일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발언기회를 통해 1940년대 한국인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국민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끌려와 노역한 부분을 인정했지만 등재 하루도 안 돼 말을 바꿨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등재 결정 직후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결정문의 내용이 강제노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으며, 일본 언론은 이 부분을 ‘일하게 됐다’는 표현으로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이와 같은 행태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혹시나 모를 강제노동 피해자들의 소송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과거사를 둘러싼 일본과의 줄다리기에서 이기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역사를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자료들을 모아 보다 적극적으로 국제 사회에 알리려는 노력이 있어야 했다. 또한 무엇보다 역사의식이 바로서야 하며 ‘보여주기식’ 행동이 아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진심으로 뛰는 마음이 싹터야 한다.

이번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제주 해녀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의 꿈마저 일본의 아마(일본의 잠수녀를 칭하는 말)에게 빼앗기는 우를 범한다면, 이는 진정 국제 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아마의 기원은 제주 해녀”라고 인정했던 일본학자들이 입장을 철회한 것도 모자라 일본 아마의 역사를 3000년 전까지 앞당기며 국제 사회를 기만하고 있는 지금, 우리 정부와 관계 부처의 앞으로의 행보에 국민의 눈과 귀가 향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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