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관련 전문가들이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제도 악용… 멀쩡한 사람도 환자 둔갑시켜 불법 감금
“부양의무자보다 후견인 판단 우선시해야” 의견 제시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 특정종교를 믿는 김모(25, 여)씨는 올해 초 종교가 다른 부모에 의해 강제개종상담소에 끌려갔다. 이 자리에서 개종을 강요하는 상담사와 부모의 요구를 김씨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자 부모는 그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켰다. 물론 김씨는 어떤 정신질환에도 걸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사자의 동의가 없어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킬 수 있는 현행 정신보건법 조항 때문이었다.

이는 강제입원 제도를 악용한 사례 중 하나다. 이처럼 현행법의 허점을 이용한 인권침해를 막고 정신질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도 정신병원 입원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 정신보건법에선 정신병원 입원의 경우 자의입원,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시장·군수·구청장에 의한 행정입원, 응급입원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가운데 환자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집행할 수 있는 비자의(강제)입원은 정신 건강의학과 전문의의 판단과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로 이뤄진다. 가족 중 두 명 이상과 정신과 의사가 모종의 목적을 두고 결탁하면 멀쩡한 사람도 정신병원에 감금할 수 있는 것이다.

2013년 기준으로 자의입원 비율은 26.5%, 보호입원(강제입원) 비율은 71.4%에 달한다.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자의입원 비율과 달리 보호입원 비율은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비자의입원이 각종 인권침해 소지가 되는 것은 물론 범죄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종교 갈등, 재산 다툼 과정에서 정상인이 정신질환자로 몰려 정신병원이나 정신요양시설에 강제입원을 당하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강제입원 결정 과정에서 환자 본인의 자기결정권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인권침해 논란 역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제도개선 공청회’에선 강제입원 결정 시 부양의무자인 가족보다 법정 대리인인 후견인의 판단을 우선시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명수 법제위원은 보호의무자 순위를 부양의무자, 후견인 순에서 후견인, 부양의무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또한 강제입원 동의자가 모두 친족인 경우 환자 본인 또는 친족 관계가 없는 후견인의 동의를 추가로 받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경우 부양 의무가 없는 후견인과 부양의무자인 가족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해 1월 16일 정부가 제출한 정신보건법 개정안에선 현행 보호의무자의 순위를 부양의무자, 후견인 순으로 정하도록 했다. 또 입원 요건을 ‘자·타해 위험성 또는 입원 필요성’에서 ‘자·타해 위험성 및 입원 필요성’으로 강화했다. 최초 입원 심사기간도 현행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였다.

신권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원 요건을 엄격하게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기준이기 때문에 그 판단을 심사할 수 있는 제3의 독립된 국가기관이 있을 때만 적절한 통제가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신질환자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신보건시설에 강제입원시킬 수 있도록 한 정신보건법 제24조 1·2항 자체가 위헌이라는 의견도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에선 이와 관련한 위헌법률심판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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