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그럴 것이라고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어김없이 연말 국회에서도 싸움판이 벌어졌다. 정부의 4대강 사업 예산이 도화선이 돼 야당의원들이 국회예결위원회 회의장을 기습적으로 점거한 것이다. 여야가 세종시와 4대강 문제로 피차 격앙의 수위를 높여온 터라 애초에 연말 예산국회가 조용히 넘어가리라고 예상할 수는 없었다.

예상대로 역시 익숙한 수법이 동원대 싸움판이 벌어졌고 국민의 눈에도 이것이 조금도 낯설지가 않다. 또한 특정의제에 볼모가 돼 다른 모든 의안 처리들이 지연되고 있는 모습도 매번 되풀이되는 패턴 그대로다. 정히 꼭 싸워야 할 의제가 있다면 다른 합의할 수 있는 것들은 처리해놓고 싸웠으면 하는 것이 국민들의 목 타는 바람이지만 쌈꾼들은 그리하면 투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동시에 선명하게 보일 수 있는 강경한 수단을 선택함으로써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국회의원으로서의 존재감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을 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대의가 아닌 작은 정치적 이해타산이다. 하지만 그것은 쌈꾼들의 논리이고 계산이지 국민이 뽑아 국민을 섬겨야 할 정치인들의 큰 도리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 국회에는 싸움만 있고 정치는 없다는 원성이 생기는 것이고 이 소리에 국회의원들이 억울하게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과문(寡聞)한 탓인지는 몰라도 4대강 사업과 그 예산에 관한 문제는 여야가 논의하다 말고 돌연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서로 마이웨이(my way)를 선언해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듣는 소식이 정확하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이해된다. 민주당이 4대강 사업 예산의 삭감을 요구하면서 강바닥 준설과 보의 설치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여당이 그것은 4대강 사업의 본질이므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절충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이야 말로 대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지 대화를 하겠다는 태도는 아니다. 강바닥 준설과 보의 설치가 4대강 사업의 핵심이라면 더 더욱 그것이 왜 꼭 필요한지를 발의한 여당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야당과 대화하고 설득해가야 마땅한 일 아닌가. 그 과정을 통해 국민들도 저절로 4대강 사업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회에서의 충분한 대화와 토론은 국민에 대한 의무이자 책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4대강 사업에 대해 제대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왜 국회에서 그토록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해야 하는지 영문을 모르는 국민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야가 극한 대치 상황 속에서도 오는 29일부터 31일까지 본회의 개최를 열기로 하는 극적인 타협을 이루어 내기는 했지만 상황이 본질적으로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 기간에 국민이 바라는 민생 법안 등 계류 중인 많은 법안과 의안이 원만히 처리될지 주목된다.

어쨌든 4대강 사업의 찬성과 반대의 논리에 대해 국민을 이해시키는 방법은 여야의 충분하고 충실한 대화이어야지 싸움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명확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치달은 것은 드러내놓지는 않았지만 예정됐던 코스나 다름없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그런 사리를 몰라서 대화를 접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강바닥 준설과 보의 설치를 반대하는 것에서 명백해지는 것은 야당은 4대강 사업 자체에 동의해줄 생각이 없는 것 아닌가.

여당 역시 처음부터 마음먹기를, 이런 야당을 상대로 대화하고 설득하려했던 것이 아니라 밀어붙이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그 방법, 그렇게 돌파할 수밖에 없다고 작정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여야는 서로 상대의 의중을 정확히 읽고 선제적 행동을 취한 셈이다. 누가 옳았는지 긴 역사의 평가가 아니라 아무리 길게 잡아도 불과 몇 년 후면 드러날 일을 가지고 꼭 이래야 되는지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미련한 일 같기도 한데 말이다. 이번 연말 국회의 싸움은 이 같은 관전 법을 동원해 본다면 다소 흥미 있는 구경거리가 될 듯도 하다.

우리 국회의 모습은 국회가 처음 구성됐을 때나 지금이나 반세기를 넘긴 역사에도 변한 것이 없는 한심한 모습이다. 역사적 평가를 받아 마땅한 반대나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안 없이 반대만 일삼는 인상을 심어준 야당, 또 하고픈 일은 무슨 수단을 빌어서라도 밀어붙이고 해치우는 여당, 그리고 이들의 격돌로 빚어내는 난장판 국회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밀어붙이기의 설움을 겪어본 야당이 여당이 되면 달라질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옛날 설움을 분풀이라도 하듯이 자기들이 겪었던 설움을 야당에 안겨준다. 밀어붙이던 여당이 야당이 되면 반대로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 야당으로 변한다. 여야를 뒤바꾸어 경험하는 민주당 한나라당이 이 같은 행태를 실연(實演)하고 있다.

밀어붙이기는 반대만 하는 야당 때문에, 반대만 하는 것은 여당의 횡포 때문이라고 하면 꼭 누구 탓이라고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하여지간 그것이 온전한 정치, 큰 정치, 바람직한 정치의 모습은 아니다. 이런 반쪽짜리 정치를 가지고도 우리가 선진국 반열에 들게 됐으니 이것이야 말로 기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목전의 과제로 등장한 국격(國格)을 갖추기 위해 반쪽짜리 정치는 시급히 청산돼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의 올 연말 예산국회가 싸움판이 되고 말았으니 이런 바람이 실현될 날이 언제일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될지, 아득히 먼 시간이 아니기 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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