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세월호 1주기를 앞둔 진도 팽목항 모습. 방문객과 주민들이 바다가 보이는 난간을 따라 우산을 쓴 채 빗줄기 속을 걷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 목포=김미정 기자, 안산=장수경 기자] 따뜻한 봄날 수학여행을 나섰던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 잠긴 지 벌써 1년. 전국 각지 지방자치단체에선 봄 축제가 한창이다. 온통 섬 천지인 신안군은 ‘튤립축제’, 영암군은 ‘왕인축제’, 목포시는 ‘유달산 꽃축제’를 열고 손님맞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근 지역인 진도와는 상반된 분위기다.

세월호 사건 이후 지난 6일 기자가 다시 찾은 진도 팽목항. 그날의 참상과 슬픔은 항구 곳곳에 여전히 서린 듯했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고, 세찬 비바람이 방문객을 쓸쓸히 맞이했다. 차량과 사람을 실은 철부선은 주룩 내리는 빗줄기 속에 부두를 바삐 오갔다.

팽목항 현장은 봄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선 다 펴지 못한 벚꽃들이 빗물에 젖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바다를 등지고 항구 난간에 설치된 플래카드엔 ‘만나기 전에는 끝낼 수 없습니다. 선체인양을 촉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진도 팽목항 터미널에선 섬으로 들어가는 철부선을 기다리는 주민들이 줄지어 섰다. 세월호 사건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고 묻자 “아직 불편한 점이 많다”며 짧게 말을 끊었다. 대답을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사고 이전 같았으면 관광객으로 붐볐을 팽목항이지만, 사고 이후엔 관광객의 씨가 말랐다. 주민들만 왕래할 뿐이다. 이날도 섬으로 들어가는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1년 전 사고 당시 팽목항에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던 응급차와 소방서, 해경 등 관계자들, 그리고 수많은 자원봉사자의 발길은 이제 잊힌 풍경이다.

▲ 6일 세월호 1주기를 앞둔 진도 팽목항 모습. 실종자를 찾아달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항구 난간에 걸려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국민의 관심도 세월 따라 멀어졌다. 지금은 방파제 난간에 매달려 바람에 휘날리는 노란 리본과 비에 젖은 현수막, 누군가 놓고 간 성경책과 묵주, 음식들만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미사를 준비하고 있던 천주교 신부들과 수녀, 신도들의 표정도 무거웠다. 수녀들은 “안타깝다. 희망을 주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대구와 대전에서 온 이들은 세월호 1주년을 맞아 추모 미사를 진행했다.

미사 장소인 컨테이터박스에선 세월호 유가족이 신부와 수녀들 앞에서 자신들의 심정을 토로했다.

준영이 아빠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유가족은 “돈 때문도 아니고, 오직 내 자식이 무슨 연유로 사고를 당했는지 알기 위해 진상 규명을 원한다”고 호소했다. “세월호 사고가 1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에 변한 건 해경 간판이 바뀐 것 밖에 없다”는 그의 말에 모두 숙연해졌다.

준영이 아빠는 “준영이가 있을 때는 사는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줬는데, 이제는 그 말을 해줄 준영이가 이 세상에 없다”며 말을 잊지 못했다.

미사를 집전한 신부는 “작은 것부터 지키고 변하도록 노력하자. 반드시 세상을 바꾸자”고 말했다.

빗방울이 굵어진 팽목항에 철부선이 들어왔다. 1년 전 세월호 구출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던 그곳이다. 봄을 잊은 이곳에선 노란 리본들이 바다를 향해 여전히 손짓하고 있었다.

▲ 9일 오후 경기도 안산 합동분향소는 오가는 사람이 없어 적막함이 감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쓸쓸한 안산 분향소

9일 오후 경기도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 분위기 역시 쓸쓸했다. 조문객들의 발길이 뜸했다. 경찰과 주위를 지나는 사람만 눈에 띄었다. ‘잊지 말아요 416’이라는 제목의 사진들이 분향소를 대신 지켰다.

분향소 한쪽 벽면에는 영문으로된 편지들이 줄에 매달려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외국인들의 글이다. 하지만 편지는 바람에 흔들릴 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편지를 읽지 않았다.

인근에는 수십 개의 노란색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억울한 죽음’을 밝혀 달라는 내용이었다.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9명)의 모습이 담긴 플래카드도 곳곳에 있었다.

‘딱 한 번만이라도 안아봤으면’ ‘얼마나 아프고 무서울까요’ 유가족들의 눈물 어린 글도 사진 밑에 함께 적혀 있었다. 노란 리본도 말없이 바람에 흔들렸다.

분향소에서 단원고까지 가는 길과 단원고 정문에도 플래카드가 걸렸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내용이었다. 마치 누군가 봐주기를 바라는 듯 힘차게 ‘펄럭’거렸다.

주민들은 세월호 사고에 대해 여전히 조심스러워했다. 함한순(67, 안산시 단원구)씨는 “매일 분향소 주위를 지나간다”며 “그날(세월호 사고)이 생각나 마음이 항상 편하지 않다”고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학생이 한꺼번에 사고를 당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며 “다시는 세월호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 다른 주민은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 분향소 쪽을 아예 가지 못했다”며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고 이야기를 하는 게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또다시 그날의 고통을 느껴야 하는 유가족들을 생각하니 목이 메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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