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국가와 국민. 이 두 단어의 관계는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가? 우리는 역사적 사례에서 그 해답을 엿본다. 일제침략에 끊임없이 저항했던 우리민족의 독립활동사례는 물론 그 이전의 의병운동, 국채보상운동, 3.1운동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항일투쟁활동의 면면이 바로 그렇다. 이렇듯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넘어서는 본질적 가치에서 그 의미를 발견한다.

전통사회를 살펴보면, 국가와 여성의 관계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근대화와 식민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국여성은 변화를 맞이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사회통념을 넘어서는 국가의 구성원임을 자각하고 외세에 대한 저항과 독립의 주체로 자각하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그 행적의 맥락은 한국여성독립운동에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많은 여성독립운동가의 활약이 있었지만 광복희망을 가족과 조국의 관계에서 찾았던 한 여성이 있다. 조국광복을 위한 집념의 독립활동이야말로 민족희망의 불씨를 틔울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임시정부의 고난과 함께하며 조국광복을 위한 이들의 대열에 서 있었던 여성, 그리고 독립정신을 가정으로부터 국가를 향해 실천했던 여성, 정정화를 주목해본다.

전라우도 수군절도‧경상좌도 병마절도사‧병조참판 등을 거쳤던 아버지 정주영(鄭周永)과 어머니 김주현(金周鉉)의 1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난 정정화(1900-1991)는 그 시대 조혼풍습의 영향으로 만 10세에 김가진(金嘉鎭)의 장남 김의한(金毅漢)과 이른 혼인을 한다. 그리고 정정화의 삶은 시대변동과 맞물려 고달픈 행로에 접어든다. 1919년 3.1만세운동과 일제침탈에 저항하는 항일투쟁의 확산, 이어진 시아버지 김가진과 남편의 갑작스런 망명 강행은 그녀의 삶을 가녀린 꽃에서 강인한 여성의 삶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정정화의 독립활동은 망명생활과 더불어 고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행적과 함께 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고된 행로와 끊임없는 독립투쟁 속에서 서슴없이 몸을 던졌던 독립운동가의 아픔을 소리 없이 품어주었던 따뜻한 어머니로, 그리고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경을 6차례나 넘나드는 강인한 여성으로 활약했던 정정화는 강한 집념으로 무장한 임시정부의 안주인 역할을 자처했다. ‘내 자식은 조국광복을 품을 수 있기를…’ 하는 염원을 담았던 그녀의 망명생활과 나라사랑실천은 독립운동가의 단합된 행보를 일구는 따뜻한 힘이 되었다.

조국광복의 희망을 가족과 함께 품고, 독립운동가와 함께 꽃피우려 했던 조국의 어머니, 정정화의 일생에는 우리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숱한 역경과 고난 속에서 애국애족정신(愛國愛族精神)을 가슴에 품고 조국독립을 염원했던 그녀의 행적은 독립정신이 고스란히 아들인 김자동(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에게로 전달하여 현재의 독립정신으로, 다시 손자손녀에게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삶에는 조국의 과거,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역사는 소리없이 흘러가고 있다. 그 시대 광복희망을 품었던 정정화의 가슴에서 빛났던 희망의 불씨가 아들, 손자에게 전해져 후손들이 지켜야 할 나라사랑정신으로 되새김질되는 것을 볼 때, 시대를 넘나드는 조국애와 나라사랑실천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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