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이산가족인 김윤희 할머니는 올해 91세다. 그는 황해북도 개성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6.25전쟁 당시 그의 나이는 25세였다. 그는 어머니와 걸음마를 겨우 뗀 딸을 북에 남긴 채, 아들만을 데리고 남으로 내려왔다. 남한에 내려와서는 잠시 교직에 있었다. 도서관 사서도 했다.

사실 그는 금방 북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할머니가 직접 쓴 아래 글은 북쪽에 있는 딸 봉미에게 보내는 가상의 편지다.

이산가족 김윤희 할머니의 편지

보고 싶은 딸 봉미에게

간절히 보고 싶은 내 딸 봉미야. 네 이름만 불러도 내 가슴이 미어지고 아픔에 숨이 멈출 거 같다.

너와의 이별이 이렇게 길게 될 줄 꿈에도 몰랐어. 이별이 잠깐이고 길어야 2~3개월이면 다시 돌아올 줄 믿었기에 개성을 떠났지 뭐야. 헤어짐이 이렇게 길 줄 꿈엔들 정말 알았겠니.

너는 다른 아기들처럼 축복과 기다림 속에서 태어나지 못했어. 집안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지. 네 아빠는 무능해서 취직을 못 했어. 내가 다시 교직을 하려고 해성 남산소학교에 다시 나갔고, 그래서 네게 애정을 줄 여유가 없었어.

난 네게 줄 모유도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어. 그땐 우유도 없었고 설탕도 아주 귀한 때라 네게 줄 음식물을 만들 수 없었어. 난 학교생활 때문에, 또 네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아 네게 따스하게 대해주지 못했어. 네가 울어도 그냥 뒀지. 그땐 살아야 한다는 본능밖엔 없었어.

그래서 네게 너무 냉정했던 거 같아. 정말 미안하다 봉미야. 그래도 넌 나만 보면 안아달라고 울고 손잡아달라고 ‘아장아장’ 내 옆으로 걸어왔어. 그걸 보면 내 마음이 더 미어졌어. 그런 널 임신했을 때나 태어난 후에나 잘 해주지 못한 게 한이야.

지금 네게 난 무엇이니. 이름만 엄마지 엄마다운 임무를 한 게 하나도 없어. 그나마 우리 어머니가 너를 보살펴 줘서 자라왔지. 네겐 엄마·아빠란 존재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어. 나중에는 네 아빠와도 헤어졌어. 난 개성 어머니 집에서 너와 네 오빠와 함께 살았어.

그러다 6.25전쟁이 나자 널 기를 수 없어 네 오빠만 데리고 떠나왔어. 그렇게 70년이란 세월이 갔으니 일 년 365일 하루도 너를 잊을 수가 없어. 너무나 네게 몹쓸 짓을 했어.

그리운 내 딸 봉미야! 지금은 너도 70살이 가까이 됐겠구나. 우리가 죽기 전에 볼 수 있을까. 세계 분단국가는 다 통일이 됐는데 유독 우리만 이렇게 분단된 채 70년이 됐다니….

어떻게 하면 다시 통일이 될까. 인간의 힘으로 통일이 안 되면 하나님께 부탁하고 싶어. 어떻게 해야 널 다시 볼 수 있을까. 내가 죽어야만 볼 수 있을까. 꿈에서 널 보려고 하지만 네 모습은 보이지 않는구나.

봉미야, 내 딸 봉미야. 혹시 길에서 마주치면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이런 현실을 난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위해, 애타게 그리며 사는 이 불쌍한 민족을 위해 결코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을 거라고 믿고 또 믿는다고.

한반도의 통일이 꼭 이뤄져서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애타게 그리는 고향에 꼭 다시 갈 수 있고, 그리운 피붙이와 만날 수 있는 기쁨을 꼭 주시리라고 믿어.

봉미야 힘을 내자.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자. 그래서 죽기 전에 이 세상에서 다시 꼭 만나자. 한 번이라도 고향 땅을 밟고 너의 따스한 손을 꼭 붙잡고 싶구나. 내 그리운 딸. 내가 한시라도 잊을 수 없는 불쌍한 딸 봉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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