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예슬 기자] #1. 백화점 잡화매장에서 근무하는 A씨는 사무실로 불려가 매니저로부터 ‘왜 4분 30초 동안이나 앉아 있었느냐’며 주의를 받았다. 당시 A씨가 새 상품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쪼그려 앉아 있었던 것을 매니저가 CCTV를 통해 본 것이다. A씨는 매니저가 자신을 쉬고 있었다고 오해한 것 보다 매대 뒤에 설치된 방범용 CCTV가 감시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불쾌했다.

#2. 의류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B씨는 구두를 신고 하루 종일 서 있다 보니 발, 허리 등 몸이 성할 날이 없다. 2년 이상 근무한 백화점 선배들은 하지정맥류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손님이 매장에 방문했을 때는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여야 한다. 숙이지 않는 것도 감점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3일 서울 신촌 현대유플렉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여러 번 있었다”며 “그러나 여전히 매출 압박, 감시와 통제, 과잉친절을 요구하는 시스템과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 6~8월 실시한 시민 설문조사와 모니터링 체크리스트 분석 결과에서도 이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여실히 드러났다. 모니터링단을 통해 접수된 체크리스트 446부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고객 수에 비해 매장당 노동자가 부족해 쉴 틈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모니터링단이 직접 백화점에 방문한 결과 매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2명 이하인 경우가 42.4%로 가장 많았다. 매장 직원이 1명이었다는 대답은 35.2%로 그 뒤를 이었다. 3명이 일하고 있는 곳은 13.2%에 불과했다.

백화점을 이용한 시민 120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는 계속 서 있어야 하는 백화점 노동자의 현실이 드러났다. 설문에 응한 시민의 94.4%는 백화점노동자가 의자에 앉아 쉬는 걸 본 적이 있냐는 물음에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실제 백화점에는 매장마다 대부분 고객용 소파가 있지만 손님이 없어도 앉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백화점 노동자를 위한 시설도 부족한 실정이다. 민우회에 따르면 고객용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화장실 등의 시설은 이용하지 않는 것이 백화점 측의 방침이다. 휴게공간도 적다. 모니터링단이 직접 확인해본 결과 백화점에 놀이방, 파우더룸, 휴게실, 옥상정원 등 고객을 위한 휴게공간은 다양하지만 직원용 휴게공간은 노동자 수에 비해 공간도 부족할 뿐 아니라 소파 하나만 놓여있는 곳도 많았다. 이에 비상계단에 숨어 쉬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스터리 쇼퍼 정책도 백화점 노동자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 중 하나다. 미스터리 쇼퍼는 고객을 가장해 매장 직원의 서비스 등을 평가하는 사람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시민들과 변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특히 긴장과 스트레스는 좋은 서비스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는 만큼 미스터 쇼퍼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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