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상 탓문화청산운동본부 대표

영화 ‘명량’이 관객 수 1700만 명을 넘어 연일 기록 갱신을 하면서 어디까지 기록을 세울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반드시 동참해야만 할 것 같은 조바심 때문에 가족과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예매 자체가 어려운 주말 낮이 아닌, 아침 일찍이었음에도 전 좌석 매진은 물론 그나마 눈이 피로하다는 이유로 모두 꺼리는 맨 앞좌석도 겨우 구할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나이 많은 노부부에서부터 부모 손에 이끌려온 어린 꼬마까지 모두가 가슴 뿌듯한 표정으로 영화관을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제에 전 국민이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승리에만 열광할 게 아니라, 장군의 올곧은 생애를 기리기 위해 만든 ‘십경도(十景圖)’의 의미를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거울로 삼았으면 하는 염원을 가져보았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 하지 마라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마라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라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하지 마라 ▲죽음을 두렵다고 말하지 마라.

이순신 장군의 ‘십경도(十景圖)’는 치열했던 전 생애를 통해 외부환경이나 주변사람을 탓하지 말고 외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탓 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 하나만 우선 살고 보자는 강퍅한 마음의 산물인 세월호 침몰 사고 후 선장은 조타수 탓, 조타수는 선장 탓, 책임 있는 당국자는 세월호 사주 탓, 정치권은 서로 상대방 탓을 하면서 진흙탕 싸움만 했던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 ‘남 탓하는 마음’. ‘명량’의 선풍적 인기 바람에 ‘남 탓하는 마음’을 실어 시원스레 날려 보낼 수는 없을까?

▲ 영화 ‘명량’.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2010년 우리나라 사회갈등 지수는 0.72로, 종교적 갈등이 심한 터키에 이어 OECD 두 번째로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지난 2009년 4위였으니, 한국사회의 갈등지수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제 갈등의 관리와 해결점을 찾는 일은 정권을 초월한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대두됐다.

실제 우리 국민의 정신건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은 패배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저마다 방향키를 잃고 난파선처럼 표류하고 있다. 극도의 개인주의 앞에서 공동체 의식은 무너지고 끝도 없는 ‘네 탓’ 공방 속에서 가치관은 전도돼 가고 있다. 바야흐로 혼돈의 시대다. 옳고 그름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회색의 시대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근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처절한 자기변신을 통해 우리 모두 ‘탓’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내가 살고 우리가 함께 사는 길이 될 것이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한국인의 잘못된 의식과 병폐를 고쳐보려고 ‘민족 개조론’을 외쳤고, ‘국민성 개조’가 되지 않으면 온전한 독립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국가개조’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도 국민의식 개조의 원대한 청사진이 반드시 마련돼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그 일환으로 수년 전 종교계에서 일어났던 ‘내 탓이오’ 운동을 시민운동으로 재점화해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 사람의 변화는 그 개인의 생애를 바꾸지만 이러한 개인의 변화가 점차 사회적 흐름을 형성해 나간다면 분명 ‘국민의식 개조’라는 큰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오직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내 탓이오’를 되새김질하는 인간성 회복의 지혜를 배워야 할 때이다. 우리 국민의 정신을 갉아먹는 망국의 병 ‘탓 문화’는 이젠 반드시 청산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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