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김영재(1948~ )

연필을 날카롭게 깎지 않아야겠다

끝이 너무 뾰족해서 글씨가 섬뜩하다

뭉뚝한 연필심으로 마음이라 써본다

쓰면 쓸수록 연필심이 둥글어지고

마음도 밖으로 나와 백지 위를 구른다

아이들 신나게 차는 공처럼 대굴거린다.
 

[시평]
글씨에는 그 사람의 됨됨이가 담겨져 있다고 하는데, 뾰족한 연필로 글씨를 쓰니, 왠지 마음이 뾰쪽해진 듯하여 섬뜩해진다. 뾰족한 마음, 우리는 때때로 뾰족한 마음으로 세상을 이리 찌르고 저리도 찔러, 세상도 또 나도 모두 불편한 삶을 만들기 일쑤이다.
마음이란 쓰면 쓸수록, 마치 쓰면 쓸수록 둥글어지는 연필심 마냥 둥글어지는 모양이다. 그래서 쓰면 쓸수록 둥글어지는 연필심 마냥, 둥글둥글 백지 위에 둥근 마음을 써놓듯이, 둥글둥글 세상과 만나 아이들이 신나게 차는 공처럼, 이리로 대굴대굴, 저리로 대굴대굴 굴러가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뭉뚝한 연필심 마냥, 슬 슬 슬 백지 위로 미끌어지듯 써내려갈 수 있는 마음의 글씨. 그래서 때로는 나를 버리고 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마음의 포용. 뾰족한 연필로 뾰족한 현실을 고발하듯 글씨를 써내려가며, 문득 그리워지기도 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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