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경질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야권에서 경질 얘기가 나온 지는 이미 오래됐지만 이제는 시민사회단체와 학자들까지, 심지어 여권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연일 제기되고 있다. 이쯤 되면 새누리당 지도부도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단순히 여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상투적인 비난이라고 넘길 일이 아니다. 과연 무엇이 국정원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박근혜정부 성공에 더 긍정적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무한정 감싸고 방어하고 귀를 닫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생생한 민심을 제대로 수렴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건의하는 것이 집권당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6월 지방선거도 코앞에 다가왔다. 그냥 이대로 가겠다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도 결국 국민에게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유감스럽게도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과 철저하지 못한 관리체계에 허점이 드러나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의 실체를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어서 그 진정성이 제대로 묻어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잘못된 관행’과 ‘철저하지 못한 관리체계’ 탓으로 돌렸다. 과연 그럴까. 최근의 안보정국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법질서의 근본마저 유린한 국정원의 불법행위는 결과적으로 국가기강을 흔든 일이 아닌가.

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국정원 개혁을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정원은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도 ‘국정원 개혁론’은 정치권 최대의 화두였다. 국회 특위까지 꾸려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던가. 그러나 쇄신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그리고 국정원이 ‘뼈를 깎는 개혁’에 반대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박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안’을 국정원에 맡기는 ‘셀프 개혁’을 주문한 당사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또 국정원에 ‘셀프 개혁’을 주문했다. 게다가 개혁의 핵심인 남재준 국정원장 거취는 말 한마디도 없다. 말로만 하는 개혁, 겉으로 모양만 내는 쇄신, 그 끝이 어디까지 가야 말잔치가 끝날 것인가. 이번만큼은 단순한 쇼로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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